금호현악사중주단이 ‘현악사중주의 20세기를 정리하겠다’고 나섰다. 절규와 비명, 다양한 소품, 연주자의 연기(演技)…. 기존의 실내악 공연에 대한 인상만으로서는 ‘절대’이해할 수 없는 세기말 음악회다. 16일 7시반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첫곡은 최근 영화음악 ‘레드 바이올린’의 주제음악을 선보여 주목받은 존 코릴리아노의 유일한 현악사중주. 간간이 낭만주의적인 유려한 선율도 맛볼 수 있는, ‘비교적 보수적’인 작품이다.
문제는 두번째곡인 조지 크럼의 현악사중주 ‘블랙 엔젤’(검은 천사). 91년 크로노스 4중주단이 음반으로 발매, 명성을 얻은 작품이다.
전쟁터의 밤. 썩은 시체들. 시체에 달려드는 벌레들. 생명이 없는 메탈 곤충…. 베트남전을 소재로 신과 악마, 선과 악, 타락과 구원의 강렬한 메시지가 그려진다. 현악사중주지만 불길하게 울려퍼지는 공(Gong·서양 징)과 연주자들의 고함 읊조리기가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각 연주자 앞에는 유리잔이 높여진다. 물을 마시려는 걸까? 혹 잔이 객석을 향해 날아오지는 않을까? 관객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세번째 작품은 머레이 쉐퍼의 현악사중주 3번. 쉐퍼는 인간 자연 음악의 합일을 주장하며 생태학자로서도 활동중인 이색 작곡가다. 악보에는 연주자들이 자리를 옮겨가면서 연주하도록 지시돼 있다. 바이올린 주자들은 객석에서 무대로 걸어나가고, 비올라 주자도 무대 뒤에서 등장한다.
“한마디로 재미있는 무대가 될 거예요. 연출자에게 혼도 많이 났지만, 세기말의 불안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한다는 데서 연주자들도 매우 흥분돼 있습니다.”
리더인 김의명은 “생소한 연기연습 덕에 체중 감량의 효과까지 있다”며 익살을 떨었다.
제2바이올린 이순익, 비올라 정찬우, 첼로 송영훈 출연. 1만∼3만원. 02―758―1204(금호현악사중주단)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