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삶과 예술]"폼잡는 예술을 하고 싶지 않다"

  • 입력 1999년 12월 15일 19시 42분


짧은 시간에, 50년 백남준의 예술을 다 훑어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백남준을 포함하여, 예술가들이란 원래 욕심이 많은 편이어서 남이 쓰는 예술비평이나 자전적 스토리는 그들의 욕망을 채워줄 그릇이 되지 못한다. 백남준은 며칠 전 뉴욕에 있는 그의 소호 작업실에서 필자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던졌다.

“이용우가 쓴 글 속에 내가 모르는 내용도 있더구먼! 재미있게 잘 읽었어.”

이야기 거리를 발로 뛰어 찾아냈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헛 정보를 근사한 이야기로 꾸몄다는 이야기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뒷맛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백남준의 말은 아마도 그의 사적인 사연들에 관하여 내가 비집고 들어간 추측이나 나의 흥미에서 유발된 상상력을 놓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백남준은 1996년 4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지금까지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러나 그의 예술가로서의 창작정신은 전과 달라진 것이 없을 정도로 여전히 진지하다. 2000년 2월11일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막될 백남준의 회고전은 비디오예술 37년을 총 결산하는 대장정이며 21세기 백남준의 예술적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백남준의 최근 생각을 독자들이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일일 것이다. 이 연재의 결말은 백남준과의 인터뷰로 마감하기로 한다.

―15년 전의 일이다. 백선생이 예술을 사기라고 정의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런 신념을 갖고 있는지, 또는 그러한 표현이 하나의 플럭서스식 시선끌기의 수단인지 궁금하다.

“예술은 잘하면 사람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진지한 표정을 내세워 사람들을 눈속임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말한 사기라는 말은 에고의 예술을 일컫는다. 나는 지금도 폼잡는 예술을 하고싶지 않다.”

―살면서 제일 실패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명성도 얻었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그런데 나와 유사한 환경의 명성을 갖고 있는 예술가들에 비하여 유독 돈을 버는데 실패한 것 같다. 믿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경제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구겐하임 전시회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료비를 조달하기 위하여 심지어 정든 작업실까지 팔려고 내놓았다. 지금부터라도 철이 들어서 자본가들이 돈을 들고 내게 어정어정 걸어오도록 만드는 비법을 연구해야겠다. 주위 친구들에게 이 비법을 연구하여 거의 성공단계에 들어갔다고 말했더니 모두 웃고 믿지 않는다. 내 신용이 말이 아니다.”

―구겐하임 같은 대형 제도권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 것이 자신의 예술적 업적을 알리는 일인가 아니면 백선생의 말대로 자본가들이 돈을 갖고 어정어정 걸어오게 만드는 책략 가운데 하나인가?

“예술은 표현을 전제로 하고 발표를 전제로 한다는 면에서 매우 정치적인 것이다. 사회 각 분야가 그렇지만, 예술계가 정치적인 것은 그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집념이 강한 집단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나는 어느 글에서, 예술에 대한 욕망이 과하여 신이 내게 뇌경색을 주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욕망은 서서히 다가오거나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욕망과 씨름하다 갈 것이다. 이것은 내 욕망뿐만이 아니라 백남준이 필요한 주변의 욕망까지 합쳐진 불균형 이등변삼각형과 같은 모양이 아닐까? 자본가들이 오게하는 희망보다 더 거친 것은 아마도 우리들의 못된 허영일 것이다.”

―사람들이 예술가를 존경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예술가는 순수하고 깨끗하다고 믿는 관념 때문이며, 둘째는 예술이 대중이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고 고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급하고 어려운 예술을 의도적으로 피해온 백선생의 의견이 궁금하다.

“예술가도 다른 직종의 사람들과 같다. 대중은 아무 예술가나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과 기타의 경로를 통하여 이미 신화화 된 예술가를 존경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존경받는 예술가 치고 신화화하지 않은 예술가가 있는가. 대중은 너무 순진하면서도 정직하다. 그 대중을 눈속임하려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비단 대중뿐만이 아니라 예술가도 대체로 순수한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훤한 대낮에 어두운 작업실에 웅크리고 앉아 인생을 고민하는 일이 어디 예사 일인가. 중요한 일은 대중은 언제나 신화를 기다리고 있으며 감동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들의 역할이 크다.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우매하다고 생각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그 것은 자가당착이다. 대중이 예술을 찾아온 예는 매우 드물다. 예술가의 역할이나 예술의 역할이 보다 사회적이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은 여기서 나왔다.”

―한국의 미술, 넓게 보아 한국의 예술이 어떻게 발전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의 예술은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한국을 떠난 6·25사변 즈음은 말이 아니었다. 김순남과 이건우, 신재덕 등의 좋은 음악가들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꽃을 피우지 못하였다. 지금은 모두가 신식 예술을 하지만 그 때는 그들이 진정한 신식 예술가들이었다.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고 참는다. 한국을 선전하는 길은 내가 잘되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면에서 애국의 길을 너무 노골화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는 말을 앞세우는 국수적인 애국자가 늘 이기는 것 같다. 국제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반반이어야 토론문화가 살아난다. 세계주의자가 늘 패배하는 나라에서는 문화의 시야가 좁아진다. 특히 건전한 토론문화는 문화의 균형을 생산하지만 성숙되지 못하면 인신공격만 난무하여 적대적인 문화만 양극화한다. 이제는 군사독재도 사라졌으니 한번 모두가 뭉쳐 뛰어 볼만하지 않는가. 한민족은 기마민족의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자꾸 뻗어나가야 산다.”

―앞으로 어떠한 예술을 하고 싶은가?

“날더러 얼마나 더 살고 싶으냐는 질문 같은데, 적어도 존 케이지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2012년까지는 살아야 내가 케이지를 추모하고 내 예술과의 만남을 다시 환생시키는 일을 해볼 것 같다. 물론 신이 허락해야 하는 일이겠지만. 앞으로 내 예술적 관심은 90년대 중반에 시작한 레이저 작업을 확장시키는 일일 것이다.”

이용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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