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나 민족의 문자를 빌려쓰고 있는 국가가 많은 가운데 우리 민족에게 쓰기 쉽고 편리한 고유문자를 선물한 세종대왕의 업적은 남녀 고른 지지(33.2%, 33.5%)를 받았다.
2위는 ‘88 서울올림픽’(22.9%)이 차지했다.
이 항목에 대한 응답은 연령별로 큰 차이가 있었다. 젊은 세대는 한글창제를, 나이가 든 사람은 서울올림픽 개최를 각각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20, 30대는 각각 45.1%와 40.7%가 한글창제를 1위로 꼽았다.
반면 40, 50대는 각각 28.8%와 24.1%가 서울올림픽을 1위로 꼽았다.
이같은 현상은 ‘배가 고파 본 세대’와 ‘풍요 속에 자란 세대’의 의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개발기에 성장한 중년 이상은 “이제 우리도 어느 정도 먹고 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서울올림픽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반면 ‘쌀밥을 먹고 자란’ 젊은세대는 한글창제라는 ‘문화적 자존심’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또 가장 위대한 인물로 1위 세종대왕, 2위 박정희를 꼽은 것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宋虎根·43)교수는 “가난과 역경을 겪은 세대일수록 한국이 힘 있는 국가로 성장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서울올림픽을 뽑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글창제와 서울올림픽에 이어 △일제 식민지 지배에 거족적으로 항거한 ‘3·1운동’(13.5%) △97년 ‘여야 정권교체’(7.2%) △임진왜란 ‘이순신의 왜군 격퇴’(5.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5공화국 때 대학시절을 보내며 학생운동을 한 ‘386세대’가 속해 있는 30대만이 다른세대와 달리 3·1운동(9.2%)보다 여야정권교체(10.1%)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386이후 세대’로 민주화 이후 세대로 볼 수 있는 20대는 3.9%만이 여야정권교체를 1위로 꼽아 대조적이었다. 또 지역별로는 호남에서만 이 항목이 3위(16.7%)에 꼽혔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3.1∼7.2% 수준이었다.
3·1운동, 이순신의 왜군격퇴, 안중근의사 의거 등 일제에 맞선 민족항쟁에 관한 항목은 나이가 많을수록 많이 꼽았다. 이는 젊은세대일수록 일본과 일본문화에 상대적으로 거부감을 덜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