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10년, 남대문에 격문이 붙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허균의 심복 짓이라는 것이 탄로났다. 허균을 잡아 심문끝에 역적모의를 하였다 하여 동료들과 함께 저자거리에서 능지처참하였다.’
사료에 나타난 허균(許筠·1569∼1618)의 최후. 오늘날 그의 죽음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권력자인 이이첨과의 갈등으로 누명을 썼다’는 것과 ‘실제 역모를 꾀했다’는 것.
‘홍길동전’을 지은 소설가, 경세가, 풍운아…. 우리가 기억하는 다양한 허균의 모습. 작가 김탁환은 새 장편 ‘허균, 최후의 19일’(푸른숲·전2권)에서 실패한 혁명가의 모습을 독자의 눈앞에 띄워올린다.
북인의 거두 이이첨과 야합, 좌참찬의 영예를 누리면서 승승장구하는 허균. 그러나 청년시절부터 절친했던 ‘무륜당(無倫黨)’의 벗들과 모반을 꿈꾼다. 허균을 이용하면서도 경계해온 이이첨은 반역의 냄새를 재빨리 읽어내고, 광해군에게 그의 체포를 종용한다.
청년시절부터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함께 열정을 불태워온 네살 차이의 두 벗, 광해군과 허균. 국문(鞠問)의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마음속의 대화를 나눈다.
‘이 길밖에 없었느냐? 나를 짓밟아야만 너의 희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냐?’ ‘전하의 힘만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외척들의 목을 모조리 벨 수 있사옵니까?’
역사상 혁명의 열정을 형상화한 점은 홍명희 ‘임꺽정’, 황석영 ‘장길산’ 등과 공통되지만, 짧은 시간의 단면을 끊어 펼쳐놓았다는 점과, 지식인층만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는 점에서이책은특이한자리를 갖는다.
“행복한 체제에 대한 고뇌, 더 나은 삶을 향한 갈망, 실패하더라도 패배하지 않는 투지를 지녔던 세대를 위해 이 소설을 썼다. 눈물 흘리는 만큼, 분노하는 만큼 단단해지는 인생을 그리고 싶었다.”(작가의 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