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으로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살아나온 사람의 경우, 삶의 철학과 인생관이 크게 바뀌는 일이 적지 않다. 중하게 여겼던 가치들이 사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든가,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든가….
IMF라는 ‘중환자실’을 나오면서 우리들 가정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을까. 육군사관학교 정치·사회학과 교수인 이동훈박사가 최근 펴낸 저서 ‘위기관리의 사회학’에서는 전쟁 등 재난을 맞는 과정에서 독특한 국민적 성향과 구조적 특징을 이용, 독창적인 위기관리시스템을 갖게 된 나라(또는 집단)들의 사례를 유형화해 설명하고 있다. 이 분류의 틀을 가족에 적용시켜 보자. 이제 등장하는 가족들은 이용가능한 ‘무기’를 총동원해 IMF사태라는 전쟁을 자신들의 승리로 이끌어낸 경우. 이들은 “어떤 위기가 닥쳐도 겁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위기 속에서 발견해낸 그들의 삶의 철학을 들어본다.》
▼미국식 세계경찰형▼
[다양한 지원시스템으로 인해 위기가 닥치면 오히려 세력이 확장됨.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울수록 여유를 가짐. 면밀한 사전조사 후 움직임.]
한국리더십센터㈜ 기획팀 박정길과장(31)은 97년 IMF를 앞두고 경기가 하강하는 시점, 대출받은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 급기야 작년 1월 결혼할 코앞에 두고 3000만원의 빚을 졌다.
이 사실을 안 장모 김명식씨(62)가 혼수비용에서 1000만원을 빼내어 지원했고, 장인(지난 10월 작고)은 결혼 부조금으로 들어온 돈에서 1000만원 건네줬다. 아내 성현정씨(28·은행원으로 현재 출산휴가 중)는 그동안 부은 적금을 해약했다.
박씨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올여름에 접어들면서 ‘금리를 한자리 수로 유지한다’는 정부방침을 듣고는 적금을 한 개만 빼고 모두 해약, 주식으로 들어갔다. 재무구조가 튼실하지 않은 회사의 주식은 사지 않았고 이익금의 일부는 경제계 산업계 선후배와 만나 다양한 정보를 얻는 비용으로 재투자했다. 박씨는 이후 한번도 값이 떨어진 주식을 팔아보지 않았다.
작년 3월 대기업을 그만두고 지금의 직장으로 옮겼다. 아내의 권유로 유럽 5개국을 홀로 여행하던 중 스위스의 융프라우에 올라 ‘과연 나에게 소중한 것(지배가치)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①신앙 ②가족 ③일 ④건강 ⑤경제력 ⑥국력.
그는 “IMF로 인해 적금, 월급, 조직이라는 기존의 ‘테두리’가 모두 해체되는 현상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또다른 경제위기가 닥칠 것에 대비해 부동산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이스라엘식 국민전사형▼
[주변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력이 취약해 생존을 위한 절실한 구호를 강조하면서 구성원의 정신적 힘과 단결을 중시함.]
대동은행 직원이었던 박정식씨(30) 한승아씨(26) 부부는 정부의 금융권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은행이 퇴출되면서 작년 6월 동반 퇴직했다. 은행주식을 사려고 대출받은 돈 3000만원은 고스란히 빚이 됐다.
박씨는 한 파이낸스 회사에 들어갔으나 곧이어 불어닥친 ‘파이낸스 사태’때문에 사실상 업무정지 상태를 맞았다. 10월부터 군고구마 장사로 나섰다가 리어카를 도난당했다. 11월부터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으로 포장마차를 밀고 나간다.
장모 이정운씨(61)는 딸 부부의 안타까운 처지를 보다 못해 작년 10월 숯불갈비집을 차렸다. 박씨는 새벽같이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주고 매달 50만원씩을 월급으로 받는다. 아내 한씨는 주방 일을 보고 용돈을 받는다.
해병대 출신인 박씨는 새벽1시 포장마차를 마치고 귀가하면 아내와 다짐한다. “인상 쓴다고 돈이 생기나. 웃으며 살자” “힘들지 않을 때까지는 절대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말자”.
박씨는 IMF를 겪으며 ‘시간으로 돈을 사자’는 가훈을 내걸었다. 하루 5시간을 채 못자는 박씨는 이같은 가훈을 벽에 써붙여 놓고 수시로 다짐한다.
박씨는 절망에 빠진 무렵부터 두가지 원칙을 정해 지켜오고 있다. 하나는 ‘해병정신을 잊지 말자’. 없는 시간을 쪼개어 매주 두 번 해병전우회에 나간다.
둘째는 ‘복(福)은 준비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니 늘 대비하자’는 것. 그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주택복권을 사고 있다.
▼북한식 병영요새형▼
[자력갱생 및 자수성가를 원칙으로 삼아 개개인의 전투력과 생존력을 강조함.]
기업은행 서울 용산지점 나성재계장(32)의 가족은 IMF로 나씨의 연봉이 300만원 가량 떨어지자 모두 ‘전장(戰場)’으로 뛰어들었다. 어머니 장효순씨(53)는 97년 말 서울 마장동에서 채소도매업을 시작했고 아내 정미정씨(29)는 네트워크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나씨 가족은 독립채산제다.‘누구에게도 손 내밀지 말자’는 게 가족간 협정사항. 아내 정씨는 남편에게서 생활비로 매달 20만원을 받는다. 각종 공과금과 아파트 관리비는 나씨의 몫.
삼성카드 사업부에서 근무하는 동생 성덕씨(27)는 웬만해선 집에 돈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장가갈 때 형이나 어머니로부터 한푼도 지원받지 않기로 약속했다.
나씨는 “IMF를 거치면서 가족끼리 돈문제로 왈가왈부하는 일이 오히려 없어져 친밀해졌다”며 “그러나 재산의 응집력이 없어 큰돈을 굴리지 못해 재테크에는 취약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나씨는 매일 어머니 아내 동생 아들의 통장에 각기 1000원씩을 자신의 벌이에서 입금시킨다. 따뜻한 마음을 연결해 주는 ‘끈’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어머니에겐 환갑 때, 아내에겐 결혼 10주년 때, 동생에겐 장가갈 때, 아들에겐 중학교 입학할 때 통장을 선물로 주려고 한다.
“경제난이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줘 경쟁력을 갖추도록 했습니다. IMF를 겪으면서 인생은 자극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큰 소득이 아닐까요.”
〈이승재기자〉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