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6th 밀레니엄]기원전 1001년, 단기 1332년

  • 입력 1999년 12월 20일 19시 58분


‘삼국유사’에 따르면 단군이 이 땅에 고조선을 건국한 때가 기원전 2333년. 한반도의 첫밀레니엄은 기원전 2001년 막을 내렸고 두번째 밀레니엄은 이후 기원전 1001년까지였다. 이들 두 밀레니엄은 신석기시대였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10세기∼기원전3세기경이므로 두번째 밀레니엄의 마지막해인 기원전 1001년은 ‘청동기 전야(前夜)’였다.

청동기시대는 벼농사와 계급분화가 시작된 시기. 석기를 쓰던 단계에서 벗어나 금속으로 생활도구나 무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직접 벼를 재배했다는 점은 한반도 문명사에 있어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 문명사의 혁명적 시점 ▼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술적 미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사실. ‘문화’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기원전 1001년의 밀레니엄 전환기는 물질과 정신이 질적으로 도약하던 변혁기였다.

▽예술적 미의식의 등장〓청동기시대의 미의식은 청동거울, 농경무늬청동기, 암각화(바위그림) 등에 잘 나타난다.

▼ 예술적 美의식 발달 ▼

청동거울은 번개무늬 별무늬, 직선과 원 등 변화무쌍한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자유분방함 과감함이 돋보이는 추상적인 아름다움이다.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도 기하학적 무늬가 나타나지만 청동거울만큼 자유분방하지는 못하다.

농경무늬청동기는 농사짓는 모습을 새겨넣은 의기(儀器). 각종 대상을 단순화하면서도 그 특징을 놓치지 않는 세련된 미감을 보여준다.

미의식이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암각화. 경상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암각화엔 호랑이 돼지 산양 돌고래 등 각종 짐승과 수렵 어로 장면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또한 동심원 마름모 소용돌이 물결 등 기하학적 무늬도 함께 표현되어 있다. 사실과 추상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청동기시대의 일상문화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암각화는 물질적 풍요와 종족 번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풍요를 기원하는 청동시기대인들의 종교적 주술적 신앙의 한 표현이다.

그러나 거기엔 원초적인 미학이 들어있다. 대상의 특징을 포착해 적절한 이미지로 표출할 줄 아는 안목, 과감하고 대범한 선 묘사를 통해 다양한 상상력을 유발하는 조형감각, 원시적 생명력과 같은 당시의 삶과 문화를 놓치지 않는 사회의식 등.

▼ 암각화는 첫 예술작품 ▼

▽청동기시대, 예술과 문화의 시대〓물론 이것이 한국인 고유의 미의식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반도 뿐만 아니라 타지역의 청동기문화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반도인의 예술적 표현의 출발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한반도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최초의 작품들이다. 암각화와 같은 청동기시대 작품이 한국미술사의 맨 앞에 위치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로 진입하던 기원전 1001년, 한반도의 예술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 땅에 문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반도 6번째 밀레니엄 전야인 1999년은 2999년 이후에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