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는 벼농사와 계급분화가 시작된 시기. 석기를 쓰던 단계에서 벗어나 금속으로 생활도구나 무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직접 벼를 재배했다는 점은 한반도 문명사에 있어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 문명사의 혁명적 시점 ▼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술적 미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사실. ‘문화’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기원전 1001년의 밀레니엄 전환기는 물질과 정신이 질적으로 도약하던 변혁기였다.
▽예술적 미의식의 등장〓청동기시대의 미의식은 청동거울, 농경무늬청동기, 암각화(바위그림) 등에 잘 나타난다.
▼ 예술적 美의식 발달 ▼
청동거울은 번개무늬 별무늬, 직선과 원 등 변화무쌍한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자유분방함 과감함이 돋보이는 추상적인 아름다움이다.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도 기하학적 무늬가 나타나지만 청동거울만큼 자유분방하지는 못하다.
농경무늬청동기는 농사짓는 모습을 새겨넣은 의기(儀器). 각종 대상을 단순화하면서도 그 특징을 놓치지 않는 세련된 미감을 보여준다.
미의식이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암각화. 경상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암각화엔 호랑이 돼지 산양 돌고래 등 각종 짐승과 수렵 어로 장면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또한 동심원 마름모 소용돌이 물결 등 기하학적 무늬도 함께 표현되어 있다. 사실과 추상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청동기시대의 일상문화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암각화는 물질적 풍요와 종족 번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풍요를 기원하는 청동시기대인들의 종교적 주술적 신앙의 한 표현이다.
그러나 거기엔 원초적인 미학이 들어있다. 대상의 특징을 포착해 적절한 이미지로 표출할 줄 아는 안목, 과감하고 대범한 선 묘사를 통해 다양한 상상력을 유발하는 조형감각, 원시적 생명력과 같은 당시의 삶과 문화를 놓치지 않는 사회의식 등.
▼ 암각화는 첫 예술작품 ▼
▽청동기시대, 예술과 문화의 시대〓물론 이것이 한국인 고유의 미의식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반도 뿐만 아니라 타지역의 청동기문화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반도인의 예술적 표현의 출발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한반도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최초의 작품들이다. 암각화와 같은 청동기시대 작품이 한국미술사의 맨 앞에 위치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로 진입하던 기원전 1001년, 한반도의 예술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 땅에 문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반도 6번째 밀레니엄 전야인 1999년은 2999년 이후에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