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렸고 인간은 ‘이성에 대한 신뢰’를 회의해야 했다. 좌우 이념 대립이 극에 달했고 세계는 미―소를 양 축으로 하는 서방진영과 공산진영의 큰 틀로 짜여졌다. 이 틈을 비집고 제3세계를 표방한 비동맹국들 그룹이 생겨났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퇴색하는 양상이다.
동서냉전은 1980년대말,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방) 노선을 필두로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이어지면서 막을 내렸다. 외견상 사회주의 몰락, 자본주의의 득세를 의미했지만 세계는 신자유주의로 나아가면서 또다시 강대국의 이익추구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미국주도의 세계질서 재편이란 분석도 나왔다. 한편으로는 민족분쟁 종교분쟁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20세기는 과학의 시대였다. 과학발전으로 인류는 물질적 복지를 누렸지만 원자폭탄이 전쟁무기로 사용됐고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사고, 복제양 돌리 탄생 등 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환경파괴, 인간성 상실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지성사적으로 보면 20세기는 인간 이성을 둘러싼 치열한 논란의 시대였다. 이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으로 요약된다. 인간의 이성이 인류문화 발전을 가져왔다고 믿는 모더니즘, 인간 이성은 인류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도구로 이용됐다고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은 동시에 이성 중심으로 세계 지배를 꿈꾸었던 서구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함으로써 제3세계 약소민족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준 가치관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20세기 벽두에 출간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역시 인간의 이성 이면에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전면에 끌어냄으로써 이성 중심의 가치관 전복에 기여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제3세계 국가들이 서구중심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하나둘 극복해나가는 이론적 토대로 활용되기도 했다.
한국의 20세기는 일제 지배로부터 시작됐다. 을사조약에 이어 한일합방이 강제로 이뤄졌다. 민족의 독립운동이 있었지만 광복은 남의 손에 의해 주어졌다. 비로소 우리말과 글, 문화를 되찾았지만 6·25를 맞았고 국토는 분단됐다.
전쟁과 자유당 독재의 폐허를 딛고 60년대 이후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와중에서 정치사회적 ‘암흑기’를 거친 뒤 서울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성장했다. 우리는 세계의 주요교역국이 됐지만 아직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난제들을 안고 있다. 한국과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이제 21세기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됐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