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전문가가 뽑은 '20세기 국민음식' 베스트6

  • 입력 1999년 12월 23일 18시 11분


“네가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내게 말해주면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음식은 이처럼 개인의 기호와 정체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시대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저물어가는 20세기.어떤 음식들이 우리 사회를 풍미(風靡)했을까.

음식전문가들에게 20세기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음식들을 추천받아 풍미(風味)와 의미를 짚어보았다.<편집자 주>

▼자장면▼

“아이들에게는 생일 졸업식같은 기념일에만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죠.”

웨스틴조선호텔 ‘나인스 게이트’의 이민 주방장은 60년대만 해도 서민들에게 외식의 대명사로 통했던 자장면을 흐뭇하게 추억했다.자장면은 1900년대초 인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면서 중국인들이 춘장을 돼지기름에 볶아 만든 것을 시초로 발달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자장면은 축제와 같은 음식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에 선물받지 못한 친구들끼리 자장면을 먹는 블랙데이(4월14일)가 있는가 하면 올들어서는 가요(그룹‘g.o.d’의 ‘어머님께’) CF(신세기통신의 ‘자장면 시키신 분’) 영화(‘북경반점’‘신장개업’)를 넘나들 만큼 확실한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았다.

▼부대찌개▼

햄 소시지 베이컨에 김치 두부 깻잎 고추를 놓고 양념장 넣어 얼큰하게 끓여내는 잡탕찌개.요리연구가 전정원씨는 6·25전쟁 이후 등장한 부대찌개를 20세기의 대표음식으로 추천했다.

경기 의정부시 일대에서 퍼져나간 부대찌개는 처음에는 국물 없이 소시지 당근 양파 등을 볶아내기만 했다가 국물에 고추장 풀어 끓인 것이 오늘에 이른다고 전해진다.햄 소시지같은 가공식품을 즐기는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아떨어진 것이 인기의 지속요인.

▼라면▼

미국 요리학교 CIA를 졸업한 신라호텔 블란서식당의 김창현조리사는 20세기를 ‘빠르고 간편함을 추구하는 패스트푸드의 시대’라고 요약하고 대표음식으로 라면을 꼽았다.

63년 삼양식품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생산한 이래 현재는 100가지가 넘을 만큼 세분화되어 제2의 주식으로 자리잡았다.지난해 라면시장은 1조1000억원 규모.1년동안 국민 1인당 80개의 라면을 먹은 셈으로 일본인 1인당 50개선을 웃돈다.

애초 ‘젓가락 문화권’에만 인기있던 라면은 88년 서울올림픽때 선수들이 컵라면을 먹는 장면이 전세계에 방영된 이래 맵고 얼큰한 맛을 찾는 동유럽과 남미사람들에게 한국인의 ‘매운 맛’을 전하고 있다.

▼햄버거▼

우리나라에 햄버거 체인점이 생겨난 것은 79년 ‘롯데리아’가 처음.‘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자라난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딱 맞아떨어진 음식이라고 한영실교수(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는 평가했다.“햄버거는 남 간섭 안 받고 봉지에 싸서 혼자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혼자 추는 테크노댄스와 비슷한 젊은세대 개인문화의 상징”이라고 풀이.

햄버거는 이른바 ‘쉰세대’와 ‘신세대’를 구분짓는 대표적인 문화기호의 하나이기도 하다.아이들이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서면 부모는 근처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나중에 만나 같이 오는 외식풍속도는 흔한 풍경이 됐다.햄버거는 지방과 탄수화물의 비중이 높아 90년대 어린이비만이 20%를 넘어서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비빔밥▼

외국인에게 우리 음식을 소개할 때 김치 불고기와 함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비빔밥.98년 방한한 ‘팝의 황제’마이클 잭슨도 현미비빔밥을 즐겨먹었다고 해 화제를 모았다.

궁중음식연구원의 한복려원장은 “비빔밥은 한 그릇 안에 어 육 회 등의 온갖 재료와 조리법 양념이 들어가 색감과 맛을 만족시키는 음식”이라며 “비빔밥의 인기는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화합하는 요즘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돈까스▼

63빌딩 스카이라운지의 구본길 주방장은 “‘돈까스’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정착된 포크커틀릿은 외래요리가 파고들어 대중의 사랑을 받은 좋은 예”라고 지적했다.

70년대 이후 돈까스 덕에 ‘폼잡고 칼질하는’ 문화가 생겨났다.밥상 위의 고기를 놓고 서로 눈치보던 것에서 쟁반만한 접시에 자신만을 위한 큰 고깃덩어리를 놓고 먹는 음식문화로의 변화는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70년대 중반에는 여대생들 사이에서 미팅파트너가 경양식집에서 돈까스를 사주느냐,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사주느냐로 ‘애프터’ 여부가 가름되기도 했다.

<윤경은기자> ke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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