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로 인해 공간이 살해됐다! 무시무시한 전율과 충격….”
1843년,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질주하는 기차를 보고 이렇게 외쳤다.
철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25년 영국. 지금이야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지만 당시로선 충격 그 자체였다. 철도의 등장은 19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사건중 하나였다.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인의 시간과 공간의식, 일상문화, 사회구조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변화의 흔적을 흥미롭게 추적한 인문교양서다. 철도가 19세기 유럽인의 일상과 의식 문화 심리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당시의 유럽 풍경을 세밀하게 복원해냈다. 저자는 독일 출신이며 미국에서 프리랜서로 활동 중.
이 책의 매력은 문화사적인 시각으로 철도를 이해한다는 점. 철도의 문화사인 셈이다. 그리고 철도를 통해 19세기 유럽 풍경을 읽어내는 저자의 안목도 돋보인다.
철도는 우선 사람들의 여행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흙냄새를 맡아가며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었던 마차 여행의 여유로움은 사라졌다. ‘총알처럼’ 빠른 기차는 주변의 풍광을 살롱에 걸린 그림처럼 그저 스쳐지나가는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철도는 그 ‘빠름’으로 인간의 시간 공간을 확장시켰지만 동시에 인간과 하나였던 시간 공간개념을 무너뜨렸다.
철도는 또한 출발시간을 지켜야 하고 역사(驛舍) 안에서 기차를 기다리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질서에 순응할 것을 강요했다. 철도는 철도역을 중심으로 도시의 모습도 재편했다. 철도는 이렇게 개인과 사회의 문화를 모두 바꾸어 나갔다.
저자는 또한 철도가 사회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유럽은 오랜 계급사회였던 탓에 처음부터 객실의 등급화가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철도와 인간의 심리적 의학적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흥미롭다. 당시 철도 종사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 화물처럼 취급됐던 여행객들의 심리적 불안정, 철도사고가 늘어나면서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병리적 현상 쇼크 등. 기술문명의 이면에 감춰진 부정적 현상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철도를 통해 한 시대의 문화풍경을 읽어내는 저자의 해박함과 풍요로운 상상력. 이것이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철도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유럽 백화점의 문화적 풍경을 철도문화와 연결시키는 대목이 그렇다. 저자는 백화점에 가득 진열된 상품이 기차의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흡사하다고 본다. 당시 철도가 일상문화에 얼마나 뿌리깊은 영향을 남겼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됐으니 이 땅에 철도가 놓인 지도 이제 100년. 이 책을 읽다 보면 기차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유럽의 19세기 풍경이 우리의 철도 100년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