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키에 맞지 않는 초중고교의 낡은 책, 걸상. 그 때문에 아름드리나무처럼 꼿꼿이 자라야 할 청소년기에 이미 등뼈가 휘어버린다는 걱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디 몸뿐이랴. 아이들 정신을 담아 기르는 교육내용의 틀은 어떠한가. 그 또한 아이들의 무궁한 상상력, 각자의 얼굴만큼이나 다른 꿈들을 품어주기에는 진작에 ‘용량미달’이 된 것 아닐까.
이 책 ‘자퇴일기’의 저자인 ‘탈학교 모임 친구들’은 “학교는 더 이상 절대적인 교육공간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저자들은 중 고교를 자퇴하고 대안교육을 받고 있거나 아직은 학교에 남아있지만 자퇴를 원하는 아이들, 또 자퇴경험을 거쳐 대학생활을 하는 이들. 책 속의 글은 대안교육 전문지인 격월간 ‘민들레’에 실렸던 것과 ‘탈학교 모임 홈페이지’(http://members.tripod.co.kr/mindle98)에 게시됐던 것들이다.
일종의 ‘현장보고서’라 할 이 책은 ‘자퇴’나 ‘학교’라는 단어에 대해 우리사회가 품고 있는 개념 자체에 도전한다.
먼저 자퇴는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이 하는 것인가.
물리학자가 되고 싶어 자퇴 후 양자물리학 상대성이론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대입시험을 준비하는 한울이.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은 수학문제 풀이와 암기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오직 시험을 위한, 시험이 끝나면 쓰레기가 되고 마는 그런 공부로 내 삶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고 항변한다. 배우고는 싶지만 학교는 싫다는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학생이 주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이들의 제도교육에 대한 반발은 ‘존중받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는 기본권 지키기에 가깝다. 고작 한반의 10∼20%를 헤아리는 대학입학자들을 걸러내기 위해 거대한 ‘체’가 되어버린 교실. ‘나머지’ 중 그나마 깨어있는 아이들은 “내 잠재능력을 이끌어내 줄 교육을 학교에 기대하기도 어렵고 스스로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도 학교는 방해만 된다”고 푸념한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두껍다. 어렵게 자퇴를 허락한 어느 어머니는 “누구나 한국사회가 혈연 지연 학연으로 얽힌 인간관계에서 이제 탈피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내 문제일 때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아이가 부닥쳐야 할 앞날을 걱정한다.
고민하는 모든 청소년에게 답안이 되지 않더라도 이 책은 하나의 문제제기로서 의미심장하다. 이제 비좁은 것은 책걸상만이 아니라고…. ‘학교붕괴’가 아닌 ‘교육붕괴’를 막으려면 ‘학교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학교를 떠난다는 것이 결코 우쭐해 할 만한 것은 아냐…다만 내가 학교를 떠난 것을 계기로 너희 안을 천천히 들여다 보았으면 한다.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지를.’(모임 중 지민희가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