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진보당이 압살되지 않고 계속 정당 활동을 할 수 있었더라면, 한국에서도 정당정치가 일찍 자리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전쟁으로 시작된 50년대. 사회의 혼란과 황폐함 속에서 반공체제가 구축되던 시기에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맞서 ‘평화통일’을 부르짖었던 진보당의 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岩, 1899∼1959). 7월 조봉암의 탄생 100주년과 40주기를 기념해 ‘죽산 조봉암 전집’이 출간된 데 이어 그를 본격적으로 재조명한 연구서가 나왔다.
성균관대 사학과교수로 줄곧 한국 근현대 민족운동을 연구해 온 저자는 반공 이데올로기 속의 남한 땅에 ‘사회민주주의’를 실현하려다 정권에 의해 ‘법살(法殺)됐다’고 평가받는 조봉암이라는 인물을 통해 50년대 한국사회의 정치현실을 고찰했다.
저자는 개표결과에서는 패배했지만 ‘실질적으로 승리’한 진보당의 선거운동과 공약, 투표결과를 분석했다. 56년 5·15정부통령 선거가 극심한 부정선거였음에도 이승만과 접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조봉암의 주체적 대응과 사회의 객관적 변화가 어우러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
진보당의 공약은 ‘수탈 없는 경제’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자유당 등과 차별화됐고 남북긴장의 상대적인 완화, 교육의 확대, 빠른 도시화, 관료자본과 특권층의 결탁에 대한 불만 등 사회적 변화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조봉암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평화통일론’. 저자는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은 우리 민족이 더이상 피를 흘려서는 안되겠다는 염원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고 분석한다.
‘평화통일’은 조봉암이 56년 공개적으로 평화통일론을 주장할 때까지도 금기시되는 말이었다.그는 결국 평화통일 주장이 빌미가 돼 죽음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일제에 수탈당했던 농민은 이승만정권 하에서도 고통받는 피해자였으며 거창양민학살 제주4·3사태 등 현대사의 학살피해자도 많았다고 보았다.
또한 저자는 부역자의 산출 등을 통해 ‘극우반공체제’가 갖춰지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우리의 어두운 현대사에 대한 솔직한 반성도 촉구한다. 상권 530쪽 1만9000원, 하권 326쪽 1만4000원.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