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혼자맞은 IMF고아들 "경기는 좋아졌다는데…"

  • 입력 2000년 1월 3일 20시 12분


2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N아동복지시설. 영하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서도 명주(가명·9)는 오늘도 혼자 시설 놀이터 한구석의 그네에 앉아 있다. 또래 아이들 10여명이 함께 놀자고 해도 명주는 늘 도리질이다.

명주가 이곳에 들어온 지난해, 서울시 38개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진 인원은 모두 585명. ‘IMF고아’들이 쏟아져 들어온 98년의 726명보다는 크게 줄었으나 IMF이전의 400∼450명선 보다 아직 훨씬 많다.

98년8월 월세방이긴 해도 단란한 생활을 꾸리던 가정은 ‘IMF 칼바람’에 산산조각이 났다. 건설현장 막노동 일을 하던 아버지 양모씨(42)의 일거리가 끊기며 당장 끼니를 잇지 못하게 된 것.

설상가상으로 삶의 희망을 잃은 아버지의 음주와 폭행이 잦아졌고 이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가출했다.

아버지도 그후 “돈을 벌어오겠다”며 어린 3자매만 남긴 채 집을 나갔다. 남은 두 언니와 명주는 결국 친척집과 보육원으로 뿔뿔이 흩어진 것. 명주는 “아빠가 돈 벌어서 다시 돌아온다고 했는데…”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주가지수 1000 돌파, 본격적인 경기회복 등의 희소식과 새 천년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IMF 고아들’의 아픔이 잊혀지고 있다. 97년 IMF 여파로 생활이 갑자기 어려워진 가정이 아동복지시설에 내맡겼던 IMF 고아들이 경기가 상당히 회복된 지금까지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대부분 보호시설에서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것.

관계자들은 IMF여파로 아동보호시설에 입소한 ‘IMF 고아들’이 전국적으로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 동아일보 취재팀이 서울시 아동복지시설 21곳을 조사한 결과 97년이후 아동복지시설에 맡겨진 아동 중 가정으로 돌아간 아동이 한 명이라도 있는 시설은 6곳으로 이곳의 보호아동 190명 중 29명만이 가정으로 복귀한 것.

그 6곳도 ‘한시적 보호활동’을 주로 벌인 두곳을 제외한 시설에서 가정으로 복귀한 아동은 각각 1,2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최빈민층에 속하는 가정은 여전히 경기회복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 또 IMF고아들의 대부분은 경제적 문제 외에 부모의 이혼 또는 가출, 가정파탄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복귀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립아동상담소가 아동복지시설 입소아동들의 입소이유를 분석한 결과 가정불화 이혼 부모무관심 등 가정적 요인에 의한 입소는 97년 55.1%였으나 98년에는 무려 75%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IMF이전 상대적으로 윤택한 가정생활을 꾸렸던 일부 가정의 아이들은 ‘내가 오지 않을 곳에 와 있다’ ‘왜 우리 부모와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으로 부모와 사회에 대한 원망감과 반항심을 갖게 되는 등 심한 정서적 장애를 보이기도 한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이소희교수는 “정부는 사회복지를 전공한 보조교사 등을 이들 시설에 배치, 심리상담을 강화하고 청소년기 이후의 고아들에 대해서는 취직과 진로상담 등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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