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가 이곳에 들어온 지난해, 서울시 38개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진 인원은 모두 585명. ‘IMF고아’들이 쏟아져 들어온 98년의 726명보다는 크게 줄었으나 IMF이전의 400∼450명선 보다 아직 훨씬 많다.
98년8월 월세방이긴 해도 단란한 생활을 꾸리던 가정은 ‘IMF 칼바람’에 산산조각이 났다. 건설현장 막노동 일을 하던 아버지 양모씨(42)의 일거리가 끊기며 당장 끼니를 잇지 못하게 된 것.
설상가상으로 삶의 희망을 잃은 아버지의 음주와 폭행이 잦아졌고 이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가출했다.
아버지도 그후 “돈을 벌어오겠다”며 어린 3자매만 남긴 채 집을 나갔다. 남은 두 언니와 명주는 결국 친척집과 보육원으로 뿔뿔이 흩어진 것. 명주는 “아빠가 돈 벌어서 다시 돌아온다고 했는데…”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주가지수 1000 돌파, 본격적인 경기회복 등의 희소식과 새 천년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IMF 고아들’의 아픔이 잊혀지고 있다. 97년 IMF 여파로 생활이 갑자기 어려워진 가정이 아동복지시설에 내맡겼던 IMF 고아들이 경기가 상당히 회복된 지금까지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대부분 보호시설에서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것.
관계자들은 IMF여파로 아동보호시설에 입소한 ‘IMF 고아들’이 전국적으로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 동아일보 취재팀이 서울시 아동복지시설 21곳을 조사한 결과 97년이후 아동복지시설에 맡겨진 아동 중 가정으로 돌아간 아동이 한 명이라도 있는 시설은 6곳으로 이곳의 보호아동 190명 중 29명만이 가정으로 복귀한 것.
그 6곳도 ‘한시적 보호활동’을 주로 벌인 두곳을 제외한 시설에서 가정으로 복귀한 아동은 각각 1,2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최빈민층에 속하는 가정은 여전히 경기회복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 또 IMF고아들의 대부분은 경제적 문제 외에 부모의 이혼 또는 가출, 가정파탄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복귀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립아동상담소가 아동복지시설 입소아동들의 입소이유를 분석한 결과 가정불화 이혼 부모무관심 등 가정적 요인에 의한 입소는 97년 55.1%였으나 98년에는 무려 75%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IMF이전 상대적으로 윤택한 가정생활을 꾸렸던 일부 가정의 아이들은 ‘내가 오지 않을 곳에 와 있다’ ‘왜 우리 부모와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으로 부모와 사회에 대한 원망감과 반항심을 갖게 되는 등 심한 정서적 장애를 보이기도 한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이소희교수는 “정부는 사회복지를 전공한 보조교사 등을 이들 시설에 배치, 심리상담을 강화하고 청소년기 이후의 고아들에 대해서는 취직과 진로상담 등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