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조계종 '기부금 갈등'…법정다툼 비화 조짐

  • 입력 2000년 1월 3일 20시 12분


3공화국 시절 ‘요정정치’의 산실이던 요정 대원각(大苑閣)을 법정스님에게 기증, 길상사(吉祥寺)라는 절로 새로 태어나게 했던 고 김영한(金英韓)할머니의 유언을 놓고 조계종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사이에 기묘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김할머니는 99년11월 타계하기 전 시가 1000억원대의 대원각을 헌납(96년5월)한데 이어 97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써달라”며 나머지 재산 200억원도 KAIST에 기증키로 했다.

이에 따라 KAIST측은 김할머니 사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근처 남촌빌딩(공시지가 70억원)과 김할머니가 살던 8억원대의 서울 용산구 이촌동 80평빌라를 KAIST로 명의이전했다.

문제는 김할머니가 대원각을 조계종에 ‘무상증여’한 지 1년여가 지난 97년7월 “50억원을 과학기술인재 장학기금으로 사용토록 하며 이 돈을 정형모씨(재산관리인) 등 공동명의의 은행계좌로 입금처리한다”는 유언을 공증했는데 여기서 그 50억원의 재원을 ‘조계종에 기부한 대원각 땅 3필지(성북동 321의2, 321의3, 322)에 대한 채권’으로 명시한 것.

이에 따라 KAIST의 한 관계자는 “법적인 자문을 한 결과 김할머니가 유언에서 50억원을 KAIST에 헌납하겠다고 밝힌 만큼 조계종측이 우리측에 50억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계종과 길상사측은 “이미 대원각 재산 일체의 무상증여 및 증기절차가 완전히 끝난 사실을 김할머니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1년여가 지나 이런 유언이 작성된 것은 중간에 낀 사람들의 장난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유언장의 내용에도 몇가지 하자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길상사의 한 관계자는 “일체의 무상증여라는 표면적인 말과 달리 그런 조건이 붙어 있었다면 96년 기증 시점에 법정(法頂)스님이 이 재산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완강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KAIST측은 이와 달리 조계종과의 법정소송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빌딩관리인 등 김할머니의 유언을 증언해줄 증인 4명을 확보하고 공증절차를 밟고 있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렇게 양측의 분쟁이 법정다툼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주위에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세상을 떠난 김할머니의 숭고한 뜻이 훼손되지 않을까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병기기자> 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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