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란덴부르크 문 앞에는 여전히 동베를린 경비대원들이 초소를 지키고 있었지만 군중들은 벽의 곳곳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벽 위에 올라가기도 했어요. 몇 군데의 초소와 전철 역을 통해서 동베를린 시민들은 서쪽으로 마음대로 나올 수가 있었지만 동베를린을 방문하려는 외국인이나 서베를린 사람들은 프리드리히 스트라세 역에서 통관 절차를 밟아야만 했지요. 그리고 자동차에 탄 사람들은 미군과 서독 군이 지키고 있는 체크 포인트 찰리에서 수속을 해야만 되었어요. 나중에는 시민들과 정부가 차례로 담을 헐어버리고 말았지만.
우리는 문 옆에 있는 작은 공원으로 갔는데 전에는 판문점처럼 관광 명소여서 거기 철제로 만든 사다리와 전망대가 있었죠. 전망대 위에는 한 사람도 올라가지 않았어요. 동전을 넣고 들여다보는 망원경도 벌써 폐물이 되어 버렸나 봐요. 그리고 전망대에서 가까운 녹지대에 철망이 울타리처럼 서 있고 거기 흰 페인트칠을 한 십자가들이 매달려 있어요. 넓적한 십자가 한 가운데에 사람의 이름과 연도와 날짜가 씌어 있지요.
이건 뭐야….
장벽을 넘다가 희생된 사람들이래.
땅굴 같은 거로구나.
내 생각엔… 좀 다른 거 같은데?
뭐가 달라, 자유세계의 반대쪽을 질타하는 고함 소리가 들리는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아무튼 산 것들은 보다 살기 적합한 데루 이동할 자유가 있잖아.
자유를 추상화 하지 마라. 뒤 마려워 봐, 그 순간부터 나는 속박된다구. 돈 없이 어디서 자유를 찾아. 이들은 자신이 속했던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양보하며 나누어 누리던 자유를 타락시킨 거라구.
이쪽이 낙원이 아니듯이 저쪽도 낙원이 아니었어. 이제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거야.
우리 세기의 약속들을 지켜내야만 할 거야.
송영태와 나는 그런 겉도는 이야기만 하면서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오후 네시가 되자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지고 우리는 여전히 축제 분위기인 중심가로 나왔어요. 바로 앞에 아이들을 거느린 두 부부가 걷고 있었는데 우리는 대번에 그들이 서쪽 바람을 쐬러 나온 동베를린의 가족들임을 알아 보았죠. 그들은 아이들의 손목을 꼭 잡고 보도의 안쪽을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어요. 중심가에는 그런 이들이 더욱 많았어요. 밤이 깊어지면서 늘 그렇듯이 여섯 시가 되자마자 가게와 백화점들은 문을 닫고 쇼윈도우 앞에는 불이 환히 밝혀져 있었는데 마네킹들만 물건들 사이에 남아 있고 인적은 보이지 않아요. 우리는 그 인적 없는 무수한 상품 더미와 조명이 찬란한 쇼윈도우를 자본주의의 창이라고 불렀죠. 아, 이제 보니 그 말이 얼마나 어울리는지.
<글: 황석영>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