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2000학년 대입논술 문제-해설]

  • 입력 2000년 1월 7일 19시 53분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의 논술고사는 철학자의 논쟁, 소설 등 문학작품, 인문·사회과학분야 동서고금의 고전에서 출제됐다. 고려대는 ‘제도와 인간’, 연세대는 ‘인간관계’, 이화여대는 ‘돈의 이동과 개인의 삶의 질’에 대해 출제해 모두 ‘인간’이 공통된 화두였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의 분석을 토대로 출제경향과 논술의 올바른 작성법에 대해 알아본다.】

◆논제(인문계)

다음 세 제시문에 나타난 인간관계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공통된 논리를 자신의 관점에서 비판하시오. (1800자 안팎으로 쓰시오)

(가) 신관의 속마음은 춘향만 오매불망(寤寐不忘)이라. 도임 후에 환상전결(還上田結) 펴줄 일은 묻지 않고,

“우선 기생 점고(點考)하라.”

기생 명부를 앞에 놓고 차례로 호명하여, 채련이, 홍련이, 봉월이, 추월이, 죽심이, 난향이, 옥섬이 등이 다 나오되 춘향이 이름이 없거늘, 이방 불러 묻되,

“춘향 이름이 명부에 없으니 어인 일인고?”

이방이 대답하되,

“춘향이 대비정속(代婢定屬)후 지금 수절하나이다.”

신관의 말이,

“제가 수절이 어이 있으리요. 바삐 잡아들이라.”

군노(軍奴) 사령(使令) 등이 우당퉁탕 바삐 가서 대문을 박차며 춘향을 부르니, 춘향이 놀라 곡절을 물은 즉, 잡으러 온 관차(官差)거늘,

<중략>

춘향이 하릴없어 머리를 싸매고 헌 저고리 몽당치마 두루치고 울며 관문에 이르니, 신관이 뇌성(雷聲)같이 소리 질러,

“잡아들이라.”

하거늘, 계하(階下)에 섰던 나졸 춘향의 머리를 동당이쳐 잡아들이니, 신관이 춘향을 한 번 보매 형산백옥(荊山白玉)이 진토(塵土)에 묻힌 형상 같으니,

“더욱 수수하다.”

하며 침을 질질 흘리는지라. 이낭청(李郎廳) 돌아보며 하는 말이,

“듣던 말과 같은 줄 아는가?”

이낭청 대답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으로 신관의 마음만 맞추더라. 신관이 분부하되,

“네 본읍(本邑) 기생으로 도임초(到任初)에 현신(現身) 아니하기를 잘 했느냐?”

춘향이 아뢰되, “소녀 구관 사또 자제 도련님 모시고 대비정속하온 고로 대령치 아니하였나이다.”

신관이 성을 내어 분부하되,

“너같은 노류장화(路柳墻花)가 수절이란 말이 괴이하다. 요망한 말 말고 오늘부터 수청

거행하라.“

춘향이 여쭈오되,

“만 번 죽어도 봉행(奉行)치 못하리로소이다.”

신관이 대로하여 춘향을 결박하여 형틀에 앉힌 후 집장(執杖) 분부하여,

“대매에 허락하도록 치라.”

하니, 군도 등이 주장, 곤장, 도리깨 다 버리고 형장(刑杖)을 눈 위에 번듯 들어 검장(劍杖) 소리 발 맞추어 한 번 후려치니, 청천백일(靑天白日)에 벽력 소리 같은지라. 신관이 이르되,

“이제도 분부 거역할소냐?”

춘향이 아뢰되,

“사또께서 이리 마르시고 용천검(龍泉劍)으로 나의 일신을 둘을 내어 아래 토막은 저미거나 오리거나 하실지라도 목은 한양성내(漢陽城內)에 보내어 주심을 바라나이다.”

신관의 말이

“저년 요악한 년, 한 매에 승복(承服)하게 하라.”

하니, 집장이 한 번 치고 두 번 치니, 백옥 같은 다리에 솟아나느니 유혈(流血)이라. 보는 이 뉘 아니 가련히 여기리오. 삼사십장(三四十杖)에 이르러는 불성인사(不省人事)하여 죽은 듯한지라. 분부하여 하옥하니라.

(나) 대학시절의 이야기마저도 결국은 철저하게 그 전짓불로만 연결이 지어지고 있었다. G의 진술은 끝끝내 그런 식이었다. 군영 생활 3년에 대해서도 그랬고, 가정 생활, 교우 관계 모두에 대해서도 그랬다. 모두가 그 전짓불투성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자신에 관한 가장 정직한 진술을 끝까지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심문관은 G에게 진술을 중단시킨다. 기나긴 심문이 끝난 것이다. 심문이 끝났으니 이젠 심판이 내려질 차례였다. 심판이 내려졌다. 정직한 진술을 실패하고 만 G는 말할 것도 없이 유죄였다.

박준의 소설은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우선 나는 지금까지 당신의 진술을 검토한 끝에 당신의 유죄 심증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사내는 선언하듯 말하고 나서 한동안 G를 가만히 건너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그는 불안 때문에 감히 입도 열지 못하고 있는 G에게 유죄 심증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지만 이유를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말해둬야 할 것은, 사실 우리는 당신의 진술내용을 당신에 대한 유죄 심증의 근거로는 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지요. 왜냐하면 당신의 혐의 사실은 당신의 진술 태도 그것만으로도 이미 심증이 충분해지고 있었거든요. 당신이 진술한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그 태도에 의해서 말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바로 그 당신의 진술태도와 관련하여 유죄 심증의 이유를 말하지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로 당신은 우리에게 체포당해 있다는 사실, 그것을 부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당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우리에게 당신이 체포당했다는 사실-지금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출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체포하게 된 경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 자신도 그것을 잘 모르고 있지만 우리 역시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당신이 우리에게 체포되었다는 사실, 우리들 쪽으로 보면 그것은 곧 당신의 최초의 혐의점이며 그것으로 우리에겐 당신을 심문할 권리가 생긴 것입니다. 한데 당신은 그 최초의 혐의사실과 그리고 우리들이 당신을 심문할 권리를 쉬 인정하려 하지 않았어요. 물론 당신은 그것을 내게 말한 일은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심중에선 그것이 더욱 용납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훌륭한 유죄 심증의 이유가 되었죠. 둘째 번 이유는 당신이 줄곧 우리의 정체에 대해 불요부당한 의문을 품고 있었던 점입니다. 당신은 진술을 하면서 자꾸만 우리들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비밀은 영원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도 그것은 모르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것을 알아내고 싶어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죄악을 범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늘 진술을 망설이고 정직한 진술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그것 때문에 정직한 진술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음모 가능성을 노출한 것이지요. 이젠 밝혀도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사실 나는 처음부터 당신에게 어떤 음모가 있었으리라고만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당신에게 처음부터 음모 혐의를 걸어 진술을 요구한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심문 방법이기 때문이었죠. 그런 경우 진짜 피의자들은 대개 극도의 공포감을 갖게 되고 그리하여 어떻게 혐의를 벗어 보려고, 다른 식으로 혐의 사실이 드러날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마구 엉뚱한 진술을 늘어놓게 되게 마련이거든요. 물론 그렇게 해서 진짜 혐의가 밝혀진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 몇 되지 않은 사람을 철저히 색출해 내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일차 음모 혐의자가 되어 주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요. 어쨌든 음모 혐의는 가장 좋은 심문 방법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도 같은 방법을 취했던 것이지요. 한데 당신은 바로 그런 방법에 의해 훌륭하게 자신의 음모 가능성을 드러내 준 것입니다. 그들의 정체에 대한 불요부당한 의혹, 그리하여 끝끝내 정직한 진술이 불가능했던 점, 그것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음모의 가능성인 것입니다.”

(다) 이아손: 고집통이 성미를 다루기란 힘에 겹다고 안 것이 어디 한두번일까만은 또 그 성미로구나. 위에 계시는 어른의 뜻을 받들어 순순히 따르기만 하면, 그 고장에 살 수 있고 집도 지켜 나갈 수 있을 것을, 그 허튼 소리 마구 지껄이기 때문에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버렸구나. 나야 아무 상관없어. 사람마다 이아손은 몹쓸 놈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좋다. 하지만 성주님에 대한 그 말투, 추방으로 죄를 면하였으니 더할 나위 없는 다행이라고 해야 해. 성주님께는 그 노여움을 거두시도록 언제나 간청했고, 그대도 여기 남아 있기를 원해 왔어. 그런데도 그 어리석은 짓, 아직도 성주님 이야기를 마구 하고 다니니 추방당할 수밖에는 없지 않게 되었단 말이오. 그럼에도 나는 그대를 생각하여 그냥 버려 둘 수가 없어 이렇게 찾아 온 것이오. 아이까지 데리고 추방당하는 몸, 행여나 돈이 궁하지 않을까, 곤궁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여 약간의 마련을 해 온 것이오. 귀양가는 몸에는 오만 가지 곤란이 으레 따르는 법. 비록 그대가 나를 미워한다 해도 내 어찌 그대를 악의로 대할 수 있겠소.

메디아: 아아, 두고두고 비겁한 인간. 그래요, 당신은 비겁자. 그 사내답지 못한 주제, 내 입에 담을 수 있는 제일 더러운 말로 부르겠어. 능청맞게도 내 앞에 나타났으니 말이에요. 자기 사람을 모진 꼴로 만들어 놓고서도 바로 멀쩡하게 대면을 하라니 그건 자신도 용기도 아무 것도 아니야. 그건 인간의 마음을 좀먹는 병 가운데서도 가장 흉악한 몰염치라는 거예요. 하지만 잘 왔어. 어디 당신을 실컷 욕해 주면 이 가슴이라도 시원해질 것이고, 내 말을 듣고 있으면 당신 마음도 유쾌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럼 내 자초지종부터 이야기해야겠어. 당신 목숨을 구해 준 것은 누구죠? 그 아르고 선(船)에 같이 탄 선원이라면 누구든지 다 알고 있는 거예요. 불을 뿜는 황소를 잡아 멍에를 메우고 죽음의 밭에 씨앗을 뿌리도록 당신에게 시켰을 때 당신 목숨을 구해 준 것이 바로 나 아니고 누구였죠? 그뿐이에요? 그 황금양모피를 둘러싸고, 그것을 지키노라 몇 겹이고 똬리를 틀고 밤잠도 안 자는 큰 뱀을 죽여 당신께 구원의 빛을 던져 준 것도 나였어요.

그 뒤에 아버지고 고향의 집이고 다 버리고, 펠리온의 기슭, 이올코스 땅으로 당신을 따라간 것도 나였고, 앞뒤 생각은커녕 그저 돕고만 싶을세라, 자기 딸들 손에 죽는다는, 세상에도 끔찍한 죽음으로 펠리아스 왕을 해치워 당신의 근심 걱정을 덜어 드린 것도 바로 나였어요. 이렇게 끔찍이 위해 온 나를, 세상에 지독하기도 하지, 당신은 헌신짝 버리듯이 저버리고 새장가를 들었어요. 자식만 없었더라도 다시 장가들겠다는 구실이 설는지 몰라. 그런데 자식까지 있는 주제에 말이에요. 그때의 백년 굳은 맹세는 어디로 갔죠? 그때 그 맹세에 걸었던 하느님은 자리를 물러나고 새로운 법이라도 섰다고 생각하시나요? 설마하니 내게 한 그때 그 맹세를 깨버렸다는 것까지 모르실 리는 없을 테니까요. 아아, 이 오른손, 그리고 이 무릎, 간청하노라 몇 번이고 잡아 주셨지. 그 모진 사나이에게 이렇게도 참혹한 꼴을 당하다니. 그 숱한 희망들도 이제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어. 흥, 나를 언제고 변함없이 대해 주겠다고? 그걸 내가 믿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말을 믿어 보겠어. 그리고 묻겠어요. 당신의 그 비열함이 더 드러나게 말이에요. 나는 어디로 가는 거죠? 아버지께로? 당신을 따라올 때 고향 땅까지 배반했는데, 아버지께로? 아니면 펠리아스 왕의 그 불쌍한 딸들한테? 저희 아버지를 죽인 나를 근사하게 맞이해 주겠군요. 그래요, 나는 당신에게 잘해 드린다고 내 고향 땅에서 해칠 아무 이유도 없는 사람들의 원한을 산 거예요. 그 덕택에 당신 쪽에서는 나를 그 숱한 그리스 여인들 가운데 아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셨구려. 얼마나 훌륭한 남편인가…, 맹세를 깨는데 말이에요. 내가 불쌍하게도 이 땅에서 쫓겨나 귀양길을 나선다는데 도와줄 사람 하나 없이 자식들만 데리고 외로운 처지, 자기를 살려 준 계집과 자식들이 거지꼴을 하고 다니면 새 서방님에게는 그야말로 훌륭한 꼴이 되겠군요. 아아, 제우스 신이여, 당신께서는 진짜 황금과 가짜 황금을 가려내는 확실한 방법을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왜 선악을 가릴 수 있는 표시는 사람의 몸에다 그려 놓지 않으셨나이까?

코로스장: 사이 좋은 사람들끼리 다툼이 시작되면 괴상한 미움이 생겨 고치기 어려워집니다.

이아손: 어디 나로서도 한마디 없어서는 안 될 것 같군 그래. 키를 잘 잡는 뱃사공처럼 돛을 잔뜩 말아 올려, 그대의 그 시끄러운 구설의 폭풍을 슬그머니 피해야 할 판이군. 그대는 나를 위해 주었다, 내게 잘해 주었다 하고 덮어씌우는데, 내가 알기에는 이 목숨을 보전해 주신 분은 사람이건 신들이건 오직 아프로디테 신뿐이오. 하지만 이 이야기, 사랑의 피치 못할 힘으로 해서 내 목숨이 안전했다는 자초지종은 여기 늘어놓을 필요가 없어. 자세한 이야기까지 들어보고 싶지 않단 말이오. 아무튼 그대가 나를 도와 준 것으로 보자면 그건 전력을 다해 주었지. 그러나 내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데 대해서는 내게 준 것보다 내게서 얻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할 걸. 그 이유는 첫째, 그대는 야만인들 사이에 살지 않고 그리스 땅에 살게 되어, 우리의 풍습을 배워 무지막지한 힘으로써가 아니라 법에 의해서 사는 길을 알게 됐지. 그리고 그리스 사람들이 모두 그대가 영리하다는 것을 알고 그만큼 이름도 높아졌어. 만약 저 변두리에 그냥 살고 있었다면, 그대 이름이라도 전해졌을 것인가. 나 같으면 집안에 금은 보석을 쌓아 놓거나 오르페우스보다 더 아름답게 노래부르는 솜씨가 있다 해도 그보다 차라리 세상에 뛰어난 사람으로 알려지는 편을 택하겠어. 내 원정 때 이야기에 대한 대답은 그만 하기로 하지. 대체 말다툼에 불을 붙인 것은 그대니까. 다음에 성주 따님과의 혼사에 대해 나를 공박했는데 그걸 이야기해 주지. 첫째, 이번 일은 생각이 있어서 한 것. 둘째로 어리석게 일을 처리한 것이 아니고, 끝으로 그대와 아이들을 위하여 한 짓이오. 제발 가만 있어. 내가 이올코스 땅에서 이리로 옮아왔을 때 엎친 데 덮친 격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그때 유랑의 몸으로서 성주의 따님과 결혼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행운이 어디서 굴러 들어온단 말인가. 그대는 이 점에 화를 내는 모양인데, 내가 그대에게 무슨 싫증이 나서 새로운 색시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또 아이들의 수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니란 말이오. 자식은 지금으로도 충분해. 그것으로 만족이야. 그러나 말이오…, 이것이 첫째 이유인데…, 우리가 궁해서는 못 써. 잘 살아 보잔 말이오. 친구들끼리라도 가난하면 보고도 모른 체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리고 자식들을 내 지위에 알맞게 키워 보자는 거요. 그대에게서 낳은 아이들의 동기를 더 많이 만들어 같이 의지하면서, 모두 잘 살아 보자는 거요. 그대는 이 이상 더 아이들이 필요 없을 것이고, 나로서는 지금 아이들이 앞으로 생길 아이들에게서 도움을 얻는다면 잘된 일이오. 이게 잘못된 생각일까? 새로 여자가 생겼다 해서 화를 내지만 않아도 이게 잘못이라고는 하지 않을 걸. 하지만 계집이란 어리석기 한량이 없지. 그저 밤에 이루어지는 내외 사이만 좋다면 만사가 다 잘 된 것으로 생각하고, 반대로 거기 조금이라도 잘못되는 일이 생기면 아무리 덕이 되고 이로운 것도 원수 대접을 하고 만단 말이오. 아닌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여자 같은 것은 없어지고 아이들은 별도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되면 세상에 나쁜 일이 없어지게 될 걸.

◆논제(자연계)

다음 세 제시문은 현대문명이 빚어내는 부정적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하는 원인을 분석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논술하시오. (1800자 안팎으로 쓰시오)

(가) 몇 년 전,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는 ‘우리는 당신을 위해 모든 일을 해드립니다’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 맥도날드에서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모든 일을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음식이 나오면 식탁으로 가져가고, 식사가 끝나면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고, 빈 식판을 제자리에 쌓아 놓는다. 노동비용이 올라가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소비자는 종종 더 많은 일을 한다.

샐러드바는 소비자를 부려먹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고객은 빈 접시를 산 다음, 샐러드바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 그날 제공되는 여러 야채와 음식을 접시에 담는다. 이것의 장점을 재빨리 간파한 슈퍼마켓들은 매장 내에 소비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을 세심하게 진열한 샐러드바를 설치했다. 이제 샐러드 애호가들은 샐러드 요리사가 되어 점심 시간에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고 저녁 시간에는 슈퍼마켓에서 일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패스트푸드점과 슈퍼마켓의 입장에서는 아주 효율적인데, 여러 진열칸에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쓰는 종업원 한둘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많은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소비자들이 버거빵을 가지고 차림대에 가서 양상추, 토마토, 양파 따위를 넣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경우, 소비자들은 통상 일주일에 몇 분 동안은 샌드위치를 만드는 사람으로 일하게 되는 셈이다. 최근 버거킹을 비롯한 몇몇 프랜차이즈에서는 고객들로 하여금 빈 컵을 들고 손수 얼음과 음료수를 채우게 하는 혁신적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로써 고객들은 잠시 ‘음료수 판매원’으로도 일하는 것이다. 일부 초현대식 패스트푸드점에서는 고객이 컴퓨터 화면에 주문 내용을 입력해야 한다. 이렇듯 패스트푸드점은 고객들을 부려먹음으로써 효율성을 제고해 왔다.

(나) 만화영화는 합리주의에 대항하는 상상력의 대변자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만화영화에서는 기술적으로 동물이나 사물을 변형시키고, 거기에 나름의 가치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제2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만화영화는 다만 ‘진리에 대한 기술적 이성의 승리’를 확인시켜 주고 있을 따름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만화영화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뒤엉킨 줄거리가 풀리게 되는 일관된 플롯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옛날의 광대극과 흡사했다. 그러나 이제 시간의 연관 구조는 달라졌다. 첫 장면부터 모티프가 주어지고, 그것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파괴적 장면의 근거로 작용한다. 따라서 주인공은 그 이야기를 좇아가는 관객과 함께 무자비한 폭력의 제물이 된다. 즐거움을 위해 폭력 장면을 늘린 결과 작품 전체는 잔혹극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영화산업이 스스로 선정한 검열관들(이들과 영화산업은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은 사냥놀이처럼 장황하고 적나라하게 전개되는 범죄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다. 포옹 장면을 볼 때 느꼈던 즐거움은 단순한 웃음거리로 대체되고, 진정한 민족은 대량학살의 순간까지 연기된다. 만화영화에 우리의 감각을 새로운 템포에 익숙하게 하는 것 이상의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끊임없는 갈등을 희석시키고 모든 개인적 저항을 좌절시키는 것이 이 사회의 삶의 조건이라는 해묵은 교훈을 모든 사람들의 머리에 주입시키는 것이다. 만화영화 속의 도날드덕은 현실 속의 불행한 사람들처럼 채찍질 당하고, 그 결과 관객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처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겪는 폭력에서 느끼는 재미는 관객에 대한 폭력으로 전환되며, 기분전환은 중노동이 된다. 관객들은 아무리 눈이 피로해도 전문가가 자극제로 고안해낸 것을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되며, 교묘한 속임수 장치들 앞에서 한 순간도 멍청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관객들은 장면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영화가 보여주고 권장하는 그럴듯한 반응들을 재빨리 연출하기까지 해야 한다. 이런 점이 문화산업 스스로가 그토록 떠들며 자랑하는 긴장 이완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라디오 방송국이나 영화관이 대부분 문을 닫는다고 하더라도 아마 소비자들은 별로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거리에서 영화관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더 이상 꿈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순히 이러한 제도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의 이용을 의무화하지 않는 한, 그것을 굳이 이용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문을 닫는 것이 반동적인 기계파괴운동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망하는 사람들은 열광자들보다는 모든 것으로부터 고통을 받기 마련인 우둔한 사람들일 것이다. 영화는 관객이 몰입하기를 바라지만, 관객인 가정주부는, 조용한 저녁 시간에 휴식을 취하며 창 밖을 내다보듯이, 몇 시간 동안이나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도피처로 극장을 이용한다. 대도시의 실업자는 온도조절이 된 이 공간에서 여름에는 시원함, 겨울에는 따뜻함을 즐길 수 있다. 이런 기능을 제외한다면 잔뜩 비대해진 이 쾌락기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데 별로 보탬이 안 된다. 심미적 대량소비를 위해 이용 가능한 기술적 자원과 장치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경제체제의 일부에 속한다. 그런데 그 경제체제는 기아추방을 위해 자원을 활용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 우리 문화의 대부분은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기본적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심리적,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문제들에 대해서 그 쟁점을 흐리게 연막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 연막 중의 하나는 그러한 문제들이 너무나 복잡해서 평범한 개인은 파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반대로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의 기본적 문제들은 대부분 너무나 단순하여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문제들은 대단히 복잡해서 오직 ‘전문가’만이, 그것도 그 자신의 제한된 영역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제시된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때로는 의도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불신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개인은 혼란스러운 자료더미 속에 무기력하게 갇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전문가들이 찾아줄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애처롭게 기다릴 뿐이다.

<중략>

비판적 사고 능력을 마비시키는 또 다른 방식은 모든 형태의 체계적 세계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개개의 사실은 그것이 구조화된 전체의 부분일 때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성질을 상실하고, 단순히 추상적이고 양적인 의미만을 갖는다. 각각의 사실은 단지 또 다른 사실일 따름이고, 오로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만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라디오, 영화, 신문 등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파괴적인 효과를 갖는다. 어떤 도시에 대한 폭격과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발표에 이어 거리낌없이 비누와 술의 광고가 나온다.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매력적이고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중대한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로 그 아나운서가, 이번에는 그 뉴스방송을 위해 돈을 지불한 특정 회사의 비누 품질이 좋다는 것을 청취자들에게 선전한다. 뉴스 영화에서는 어뢰정(魚雷艇) 화면에 뒤이어 패션쇼 화면이 나타난다. 신문은 신인 여배우의 진부한 생각이나 아침식사 버릇을 과학계나 예술계의 중대 사건을 보도할 때와 똑같은 비중으로 진지하게 전달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들은 것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둔감해지고 우리의 감정과 비판적 판단은 방해를 받으며, 결국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밋밋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갖게 된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삶은 모든 구조를 상실한다. 삶은 무수한 단편(斷片)들로 이루어진 것인데, 각각의 단편들은 서로 분리되어 전체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퍼즐을 풀어야 하는 어린아이처럼 개인은 단편들 속에 외롭게 남아 있다. 그러나 둘의 차이는, 어린아이는 집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서 자기가 가지고 놀고 있는 작은 조각들에서 집의 각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지만, 어른은 단편들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그 ‘전체’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는 당혹스럽고 두려워서 자기 앞에 놓인 작고 무의미한 단편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해설

인문계는 각 제시문의 인간관계의 특징 분석과 공통된 논리에 대한 비판을 요구하고 있다. 제시된 글 속에서 강자와 약자의 대립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다소 까다롭다.

‘춘향’‘G’ ‘메디아’가 약자측, ‘변사또’‘사내’‘이아손’이 강자측의 대표 인물이다. 강자는 억지논리로 약자를 윽박지른다.

메디아와 이아손의 언쟁에 치우쳐 문제의 인간 관계를 단순히 남녀의 대립 양상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차별받는 약자의 하나를 예로 들어 사회적 구조에 의해 형성된 힘의 불균형과 권력의 남용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나 행복추구가 어떤 방식으로 유린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자연계는 현대 사회에서 문화산업이나 서비스산업이 편리함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을 교묘히 이용하며 더 나아가 비판능력을 마비시키는 기제를 파악해야 좋은 답안을 쓸 수 있다.

대중이 문화의 능동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수동적 수용자가 되는 현대 사회의 부정적 현상에 대한 원인 분석과 문제 해결 방안이 답안에 있어야 한다.

해결 방안으로 대중이 사회 구조의 파악과 변화에 적극 참여하고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하고 소비자단체 등의 시민운동과 같은 것을 그 논거로 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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