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위대한 정치가란 평가를 들을만하다. 영국 식민지였던 싱가포르를 독립시켜 풍요롭고 깨끗한 근대국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21세기에 대비해 지식기반경제의 틀을 튼튼히 닦아 놓았다.
약관 36세에 스스로의 힘으로 싱가포르의 정권을 잡았고 그 후 30년간을 통치했다. 오랜 절대권력 속에서도 부패하지 않았고 힘이 있을 때 후계구도까지 마련해 놓고 물러났다. 지금은 선임 장관(Senior Minister)이란 직책을 갖고 국가 원로 노릇을 하고 있다.
리콴유에게는 약소국 정치가가 갖기 쉬운 지식인 콤플렉스가 없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며 또 강대국에 주눅들지 않는다. 때문에 항상 당당하다.
중국계 3세로 태어나 영국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수학하고 케임브리지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할 만큼 높은 교양과 전문지식을 갖췄다. 그래서 허황된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서툰 지식인 흉내도 내지 않는다.
리콴유는 투표를 통해 30년간이나 집권했지만 표를 위해 눈치를 보기보다 먼저 비전을 제시해 결단을 내리고 국민을 설득해 나가는 정치를 했다. 비범한 안목과 지략 또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싱가포르가 비록 인구 300여만의 도시국가지만 리콴유는 강대국들과 당당히 맞섰다. 냉철한 이해관계로 강대국들을 설득시키기도 하고 또 폭넓은 인맥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만한 일을 능히 감당할 만큼 지성적으로도 뛰어나고 또 실적도 있다.
이 책은 리콴유가 은퇴 후 집필에 착수한 회고록 ‘The Singapore Story’의 첫 권. 한국에선 ‘리콴유 자서전’으로 번역돼 나왔다.
법률가답게 사실 기록에 입각해 간결하고 정확하게 썼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기적과 리콴유의 비밀을 푸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일본 점령기 일본 보도기관에서 일한 경력에서부터 암시장 브로커로 돈을 번 일, 또 갖가지 정책상 실수와 사생활의 약점 등도 당당하게 밝혔다.
리콴유는 한국과도 관련이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고 전두환 대통령이 싱가포르에 갔을 때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척결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첩경이 된다는 충고를 한 적이 있다.
자서전을 보면 높은 지성과 유연한 현실감각이 두드러지며 뛰어난 용기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2차대전 후 격동의 시기에 싱가포르가 그런 지도자를 만났다는 것은 싱가포르 뿐 아니라 동남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었다. 회고록 첫 권은 그의 출생부터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와 합병됐다가 분리되는 65년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속편이 기다려진다.
최우석(삼성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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