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일웅씨(33)는 부산고등학교 시절 야구부 3루수 후보였다. 한번도 실전에 나가보지 못했다. 1학년 가을엔 벌써 ‘똘똘한’ 후배가 들어와 3루수를 맡는 바람에 아예 3순위로 물러앉았다. 대학에 가려면 걸출한 동기가 스카우트될 때 ‘묻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기들 실력은 신통치 않았다. 왕씨는 결심했다.
▽야구선수에서 수험생으로〓먼 친척벌 형님을 과외교사로 맞아들였다. 학군단(ROTC)에 몸담고 있는 형님은 왕씨가 문제를 풀지 못할 때마다 “니 뭐 하노?”하며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갈겼다. 그때마다 왕씨의 뇌리에는 라이너성 타구를 다이빙해 잡아내는 자신을 보며 환호하는 관중의 모습이 스쳐갔다.
왕씨는 집을 뛰쳐나갔다. 며칠 후 돌아오니 아버지는 말했다. “니 운동할 때는 쎄리(엄청나게) 맞아도 참더니 공부할 때는 왜 그 모양이가?”
왕씨는 공부했다. 67명 중 40등이었던 성적은 2학년 말 무렵 8등까지 치솟았다. 주입식 교육이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결국 동아대 환경공학과 입학에 성공했다.
▽행정병에서 경영학석사로〓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생각할 여유를 갖기 위해 입대했다.
인사계와 중대장을 보필하는 서무계로 활약하며 왕씨는 경영마인드와 기획력에 관심을 쏟게 됐다. 내부반 내 구타를 근절하기 위해 유머경연대회를 열거나 예쁜애인사진 컨테스트를 여는 등 각양각색의 이벤트를 마련하며 사람을 다루고조직을 이끌어 가는 비결에 홀딱 빠졌다. 사병들의 월급과 휴가비, 연초비를 관리하며 재정관리도 터득했다. 왕씨는 결심했다. ‘최고경영자(CEO)가 되자.’
병장 때부터 맨투맨과 성문영어의 종합편을 줄줄 외울 정도로 공부하며 유학에 대비했다.
호주 월릉공 대학에서는 야구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논문심사교수가 미국 프로야구 뉴욕양키즈의 광적인 팬이었던 것. 교수의 아들에게 타격과 수비법을 가르쳤다.
2년만에 MBA자격을 거머쥔 왕씨는 92년 귀국, 현재 삼성테스코 기획팀 대리로 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대로 거대한(王) 하나의(一) 수컷(雄)이 된다는 신념으로 뛰고 있는 것이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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