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을 중퇴한 12세 어린이가 경찰에 이끌려 상담소에 들어왔다. 상담을 통해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는 시장에서 소규모의 점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어린이는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어머니가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을 생각해 다음날 어린이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골목길을 걸어 집을 찾아갔다. 한 시간쯤 걸려 어린이가 사는 허름한 단독주택에 도착했다.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마당에서 빨래를 하던 어머니가 빨랫방망이를 들고 나와 아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놀랐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한참만에 겨우 진정시켰다.
어머니는 “아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집을 나가기가 여러 차례”라고 푸념했다. 그러니 데려오지 말고 보호소 같은 곳에 놓아둘 수 없느냐고 물었다. 다음날 어린이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상담소로 왔다.
초등학교 2학년을 중퇴한 어린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문장력을 보였고 지능도 무척 높았다. 상담소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비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3일을 못 견디고 다시 가출을 했다. 4년 동안 이렇게 하기를 반복하자 지친 어머니는 어린이를 정신병원에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어린이는 그 후 검정고시를 거쳐 지금은 대학을 나와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남자와 사귀었다. 그후 배가 불러오자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야겠다고 아이를 속였다. 병원에서 낳은 아이를 데려와서는 해외입양 갈 아이를 집에서 키우겠다고 둘러댔다.
지능이 높은 아들이 이같은 거짓말을 몰랐을 리 없다. 어린이는 어머니의 부끄러운 사실을 알고 가출을 반복한 것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켰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문제 아동은 없다.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면 자신의 잘못은 덮어두고 자녀를 꾸중하고 때리고 심하면 버린 자식으로 낙인을 찍는 부모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는 전문가를 찾아와 지도를 의뢰하고 아니면 가정과 격리시켜 사실상 포기하려는 의사를 비치기도 한다. 자녀문제로 고민하다가 상담 전문 기관을 찾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전문가를 찾기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데 자녀에게 비쳐진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은 자녀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자녀들의 인격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내 가정은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는 좋은 환경인가. 따뜻하고 포근한 가정인가. 부부간의 불화로 자녀들에게 불안을 주지는 아니했나. 전문가를 찾기 전에 이러한 사항을 먼저 점검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영희<전 서울시립아동상담소장·강남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