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닥터의 건강학]간질환분야 서울중앙병원 이승규교수

  • 입력 2000년 1월 12일 00시 42분


지난해 5월 서울 롯데호텔에서 대한이식학회 주최로 열린 ‘독일 함부르크대 크로스토퍼 브롤시교수 초청 특강’. 브롤시교수는 산 사람끼리 간을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의 창시자다.

서울중앙병원 이승규교수(51)는 ‘보조연사’로 참석, 간의 좌 우엽 중 우엽을 안전하게 이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발표했다. 공여자의 세 정맥 중 두 개를 남겨두고 환자에겐 정맥 하나를 새로 만들어주는 ‘변형 우엽 간절제 이식술’.

브롤시교수는 이교수의 발표 뒤 “깜짝 놀랄만한 일”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 학계에서 간 우엽 이식은 공여자의 안전을 해칠 수 있어 금기로 간주됐다.

7개월뒤인 지난해말 브롤시교수는 이교수에게 급전을 보내왔다.

“에센대병원으로 옮겨 우엽 이식술을 하려니 윤리위원회에서 반대한다. 이교수가 이 수술의 안전을 증명하는 문서를 보내기 바란다.”

이교수는 지난해 113명에게 간을 이식했고 95%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세계에서 연 100명 이상에게 이식하는 병원은 약 20개. 이교수의 성공률은 세계 최고로 알려진 미국의 스탠퍼드대나 UCSF대보다 10% 높다.

▼환자가 있기에 내가 있다▼

정정하던 어머니가 98년 대구 동생집에 다니러갔다가 갑자기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를 돌이키면 이교수는 지금도 고개가 떨구어진다. 그러나 대구의 의료진을 원망할 시간이 없었다. 생명이 시급한 환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례식날 밤 그는 수술대로 향했다.

이교수는 매일 오전7시20분경 군청색 가방을 들고 병원에 출근한다. 10년 이상 똑같은 가방이다. 1주일에 최소 다섯 번 12∼20시간씩 수술하며 응급환자가 있으면 한밤에도 수술실로 향한다. 가족과의 외식도 병원 구내식당에서 한다.

평소엔 말이 별로 없다. 특히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92년 첫 간이식 수술 때 환자의 곁을 떠나지 못해 수술실로 밥을 시켜 먹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 것을 지금도 안타까워 한다.

지난해말 송년회에서 한 간호사는 “이교수가 수술실에서 너무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가는 귀가 먹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는 수술실만 들어가면 목소리가 커진다. 스승인 민병철 서울중앙병원장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자다가도 꾸중듣는 꿈을 꾸다 벌떡벌떡 일어났던 이교수는 최근 후배교수에게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살림살다가 며느리를 맞으면 더 독해진다더니 과연….”

이교수는 요즘 20일이상 감기로 고생하며 링거를 맞고 수술실에 들어간다. 3일 동안 15시간 정도 걸리는 수술을 연거푸 3번 하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 걸려버렸다.

그러나 간에 대해선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간질환은 집안력이 큰데 그 점에선 안전하다. 대신 집안에 간 질환자가 있는데도 백신을 맞지 않았다면 반드시 검사를 받거나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술은 별로 하지 않는다.

▼틈날 때마다 운동▼

외과의사로서 체력 관리엔 엄격하다.

“외과의사가 손을 떨거나 다리가 부실해 오래 서있지 못하면 끝장입니다.”

그는 매일 오전6시 서울 송파구 가락동 집 부근의 석촌중학교 운동장을 40분 정도 돌고 철봉에서 턱걸이를 한다. 또 수술 도중 성형외과팀이 동맥과 미세혈관을 연결하는 20여분 간 수술실 안의 러닝머신 위를 뛴다. 이틀에 한 번은 연구실에서 팔굽혀펴기를 한다. 최소 100번. 위팔 둘레가 다른 사람의 허벅지 만하다.

일을 위해서 엄격히 자기관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후배교수들이 본받으려고 하는 이교수의 성공 및 건강비결이다.

▼"나는 별로 한 게 없다"▼

그는 결정적 순간 때마다 주위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 왔다. 고교졸업후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말에 따라 의대를 택했다. 다섯 살 때 일본 도쿄대에서 심장병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가슴에 20㎝의 흉터가 있는 그는 전공을 흉부외과로 선택하려고 했으나 어머니가 개원이 쉬운 일반외과를 원했다.

대학 졸업과 함께 항문을 전공하기로 하고 영국 유학을 계획했지만 스승인 고창순교수의 권유에 따라 ‘당대의 칼잡이’ 민병철원장의 제자가 됐다. 민원장은 미국 뉴 잉글랜드 메디컬센터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병원이름을 신영(新英)으로 지은 ‘당대의 칼잡이’ .

83년 이교수는 민원장을 따라 고려대구로병원에 갔으며 그때까지의 전공이었던 항문을 버리고 간 담낭을 전공으로 삼았다. 민원장은 91년 이교수를 불러 “간 이식을 하라”며 매주 개 한 마리씩을 실험용 동물로 사줬다.

92년 독일 하노버대 유학 뒤 뇌사자 간이식을 첫 시도할 때엔 두 번 연거푸 수술일정을 잡았다. 독일의 스승 피클 마이어박사가 “처음 실패하면 좌절해서 다음 시도하기 어렵다”면서 권했던 방법. 이교수는 첫 수술에 실패했지만 두 번째에선 성공했다. 그리고 94년 잇단 생체이식 성공, 97년 어른간 생체이식 성공, 우엽이식 성공 등이 이어졌다. 이교수는 “스승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주위에선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성실한 품성이 그를 세계 최고의 ‘칼잡이’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건강한 肝 만들려면▼

이승규교수는 “현재 라미부딘 인터페론 등 간염 치료제가 효과적이라는 보고가 있다”고 전제, “그러나 초기에 간질환을 잡지 못해 만성 간경화로 접어든 경우엔 내과 치료로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이식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수술에 성공하면 단순히 몇 년 더 사는 정도가 아니라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다. 70년 미국에서 간이식수술을 받은 여성은 결혼해 아기까지 낳으며 30년 동안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교수는 “사람들은 술과 피로가 간질환의 주범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대부분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다”며 “반드시 간염백신을 맞아 B형간염을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수많은 간경화 간암 환자들이 장기 기증을 기다리면서 숨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간을 기증하겠다고 마음먹어도 주위에서 ‘간은 조금이라도 상하면 회복이 안된다’‘ 간을 떼주면 정력이 떨어진다’ 등 황당무계한 이유로 말리는 현실이 답답하다.

“간은 콩팥과 마찬가지로 좌엽과 우엽의 2개로 이뤄져 있어 한 개가 없더라도 나머지 한 개가 커져 좌우엽이 됩니다. 생체간이식을 통해 간의 일부를 이식해 줘도 건강에 지장이 없다는 얘기지요.”

대부분의 만성 간 질환자가 7, 8년 병원을 전전해 가산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이식수술을 받는 현실도 이교수가 안쓰러워하는 부분. 그럴 경우 검사비 치료비 등을 합쳐 8000만∼2억원의 수술비와 수술 뒤 한 달 100만원 정도의 유지비를 부담해야 한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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