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밖에 되지 않는 초파리의 일생. 그 초파리의 짧은 삶을 보고 기업 생존전략에 대한 영감을 얻은 미국 MIT 경영학부 교수인 찰스 파인. 그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럼 왜 초파리인가. 그리고 어떻게 기업과 연결되는가.
초파리는 유전학의 연구 대상이다. 일생이 짧아 세대를 거치며 이뤄지는 진화 과정을 연구하는데 제격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초파리와 같이 생명주기가 짧은 산업인 정보 오락산업으로 눈을 돌린다. 끝없는 신기술 신상품의 등장으로 불과 몇 달만에 퇴출당해야 하는 운명의 정보 오락산업. 바로 저자가 말하는 초파리산업, 초파리기업이다.
이들 산업의 짧은 진화주기, 빠른 진화속도를 저자는 ‘클락스피드’(Clockspeed)라 부른다. 이 책의 제목도 여기에서 나왔다. 초파리를 통해 진화를 연구하듯, 클락스피드가 빠른 초파리산업 초파리기업의 예를 통해 다른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과 생존전략을 도출하고자 한다.
기업을 둘러싼 상황은 빠르게 변한다. 상황에 맞추어 기업도 재빠르게 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통념이다. 저자는 그러나 재빨리 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속적인 성공은 꼭 독점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대신 ‘공급사슬설계’(SCD·Supply Chain Design)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급사슬이란 기업을 형성하고 상품이 나오는데 필요한 모든 것의 총합. 공급자 유통업자 제휴파트너 고객 등을 포함한다. 이들이 사슬처럼 연결된 역동적인 네트워크가 공급사슬이다. 이 사슬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떠한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가 결국 저자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저자는 컴퓨터회사 델을 예로 든다. 델은 어떠한 독점 기술도 없다. 그런데도 잘 나가는 것은 탁월한 공급사슬설계에 있다고 본다. 그것은 물품을 재고 없이 빠르게 소비자에게 전달한다는 점. 클락스피드가 빠른 컴퓨터산업에서 재고는 치명적이다. 사소해보이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 공급사슬의 흐름과 역량을 정확히 판단하고 가장 합당한 방법을 선택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초파리에서 출발한 저자의 접근법은 참신하다. 그러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엄밀히 보면 진화론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론이 원칙론적이라는 점도 아쉽다.
하지만 영원한 일등이 없다고 할 정도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신기술 신제품에만 매달리는 기업들은 이 책의 메시지에 귀기울여 볼 만하다. 저자의 홈페이지는 www.clockspeed.com 김기찬 외 옮김. 340쪽, 1만2000원.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