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여고생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을 방문했다. 어머니가 아이 대신 상담선생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난 일주일 내내 새벽까지 컴퓨터 통신을 하다가 아침이 되면 학교에 가지 않고 잠을 잔다는 것이다. 그 날도 그 여학생은 졸린 눈을 하고 세상 만사가 모두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냥 앉아 있었다. 상담자가 그녀에게 “컴퓨터통신이 그렇게 재미 있느냐”고 묻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면 왜 하느냐”고 물어보니 “달리 별로 할 것이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장래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21세기, 새 천년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청소년들은 바로 우리의 비전이자 미래이다. 그러나 그들을 상담하다 보면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낄 때가 있다. 어른들만 실체 없는 희망과 가능성을 거론하며 허황한 위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쓸쓸해지기도 한다. 달리 할 일이 없어 컴퓨터에 빠졌다는 여고생처럼 삶에 대한 의욕 없이 하루 하루를 지탱하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미래사회의 변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못했고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서 목표 설정을 할 수 없다. 아이들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개성을 북돋워줄 수 있는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제도적 준비도 미진하다. 다만 가정 학교 사회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어 몇 번 치른 시험 성적순으로 그들을 일렬로 세울 뿐이다. 말로는 적성을 중시하는 창의성 교육 운운하지만 실제 교육현장에서 보면 제도적 뒷받침이나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하지 않아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 뿐이다.
최근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인간의 지능이 복합적인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다중지능이론(多重知能理論)을 편다. 인간의 능력은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 또는 자신의 내부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장기의 청소년을 단순히 지능지수(IQ)나 수능점수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노동부 직업통계 편람을 보면 한국에는 약 1만2000종의 직업이 있다. 그리고 미국과 같은 선진사회는 2만2000종이 넘는다. 이 중에 청소년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상호 비교해서는 안된다.
아이들 각각을 모두 소중한 원석(原石)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제도 교육권에서 이탈해 자신의 개성과 창의성을 잃지 않고 개발하여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창조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박경애(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