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에스메이의 일기'

  • 입력 2000년 1월 19일 17시 39분


▼'에스메이의 일기' 에스메이 라지 코델 지음/공경희 옮김/세종서적 펴냄/256쪽 7200원▼

나는 이제껏 이 책보다 더 실감나는 교육현장 일기를 보지못했다. 24살 에스메이 코델이라는 여선생님이 부임 첫해 벌이는 수많은 '이벤트'를 조목조목 적어놓은 일기장을 수줍게 공개했다.

5학년 31명의 '천방지축 악동'들에 둘러싸인 '뜨거운 가슴'의 '마담 에스메이'일기를 읽으면 바로 그 속에 우리가 잊고 살았던 그리운 추억이 숨을 쉰다.

"아, 내가 나온 모교는 거기 그렇게 있을까?" "그땐 하늘보다도 넓었던 운동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리고 "나의 1학년 담임선생님은 살아계시기나 할 것인가?" "참 6년동안 말썽도 많이 폈었지"

그들의 교실은 매일매일이 전쟁터다. 다국적 아이들, 결손가정의 아이들, 학습지진아, 마음이 비틀린 아이들을 하나하나 '눈인사'하기에도 그녀는 바쁘다. '고민바구니'에 고민들 담고, 매주 '갈등해결회의'를 하고 수학은 '퍼즐풀기'로 시작하고 글자를 못읽는 아이들을 위하여 '알파벳 박물관'을 만들고 '해피박스'속에서 선물을 꺼내주고 좋은책을 읽어주고 유명작가를 초청하여 직접대화를 나누어보게 하여 꿈과 상상력을 펼치게 하고

다른 사람이 3년이 걸려도 못해낼 일들을 한해동안 정신없이 이루면서 고루한 교장과의 갈등, 굳은 교육행정조직에 절망하다가 아이들을 보면서 또 힘을 내고…

이런 선생님을 만난 '악동' 31명은 인생을 통틀어 엄청난 행운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교육에 관심만 많은 학부모도, 적당히 지치고 길들여진 현장의 선생님도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누구라도 인생의 갈피마다 끼어들어 흐트러진 마음을 여며주는 작은 시작들이 있을 것이다. '처음 그때'의 설렘과 열정을 기억할 것이다. '맨 첫 마음'(初心)으로 돌아가라! 에스메이선생이라면 몇해가 가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에스메이답게 그녀는 그 아이들이 '지금의 자기'를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우리에겐 그렇게 평생 기억될 선생님이 있을까?

최영록<동아닷컴 기자>yr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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