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1854년 아메리카 인디언 두아미쉬 수쿠아미쉬 족의 추장 시애틀은 조상 때부터 살아온 땅을 팔라는 ‘워싱턴 대추장(미국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이렇게 탄식했다.
그로부터 1세기 반이 흐른 2000년. 이제 사고 파는 것은 땅만이 아니다. 암환자의 세포주(cell line)에 대한 특허는 그의 주치의가, 파나마의 구아미 인디언의 세포주는 미국 상무부가 갖고 있다. 인도인들이 2000여년 동안 텃밭에 심어 치약과 농약 대신 이용해 온 님나무의 특허는 미국 일본의 다국적 기업들이 싹쓸이했다. 그리고 복제양 돌리를 만들어낸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는 마침내 생명복제기술 특허권을 따냈다. ‘자연의 순리’였던 생명의 탄생이 ‘유전자 조작 기술의 결과’로 자리바꿈하고 심지어 매매까지 이뤄지게 된 현실….
핵물리학자로 출발해 생태운동으로 길을 바꾼 저자 시바는 그런 일이 콜럼버스가 멀쩡히 원주민이 있는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해 “스페인 땅”이라고 선언했던 것과 같은 ‘해적질’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오늘날 지구 곳곳에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 것은 지구상에 생물체가 출현한 이후 35억년 동안의 자연적인 실험이 축적된 결과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여기에 약간의 유전자 기술을 가해 변형을 이뤄냈다고 해서 ‘창조성’을 주장하고 특허를 따내는 것은 사기이며 인류 공통의 자산을 사유화하는 도둑질이라는 것.
제삼세계인 인도 출신 여성으로서 시바는 이 ‘생물해적질(Biopiracy)’이 자연과 이성을 분리, 대립시키고 이성의 자연 지배를 ‘선(善)’으로 여겨온 서구철학에 의해 합리화돼 왔다고 분석한다. 서구의 과학혁명은 자연을 ‘죽어있고 무기력하며 오직 외부의 힘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인간의 자연에 대한 조작을 정당화해 왔다는 것이다.
‘생물해적질’, 즉 생명체에 대한 특허 부여가 인류에게 몰고올 재앙은 다국적 기업들이 지구를 샅샅이 뒤져 쓸만한 자원들을 모두 사유 재산으로 만든다는 경제적 수탈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적인 생명은 스스로 생식 증식하지만 유전자 조작에 의해 조직된 시스템은 성장하지 않는다. 자연적인 조직은 스스로 치료하면서 변화되는 환경 조건에 적응하지만 기계적으로 조직된 시스템은 치료도 적응도 못하고 망가질 뿐이다. 생명에 공학을 적용하는 것이 결국 생태계의 자기조직성을 파괴한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대안은 없을까. 저자는 먼저 이성중심의 서양적 가치관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만물의 어머니, 대지’를 되찾는 에코페미니즘(Eco Feminism)을 제시한다. 실천방안으로는 이미 인도의 시민운동으로 뿌리내린 ‘씨앗 지키기’를 제시한다. 이는 농민들이 종자회사로부터 씨앗을 사지 않고 전 해의 수확에서 씨앗을 거둬 다음해 농사를 준비하는 전근대적인 방법. 지구 각국의 농민들이 제 땅에 제 씨앗을 뿌리는 방법이야말로 종(種)다양성을 보존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21세기 과학의 꽃으로 불리는 생명공학. 그 이면의 어두운 작동논리를 간파하기 위해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한재각 외 5명의 번역자는 생명공학 감시운동을 펼치는 젊은 과학도들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