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벽두 프랑스 신문 서평난에는 지난 세기 서양 역사의 재해석과 미래 진단을 다룬 책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세기의 악’이라고 불리는 나치즘과 공산주의 비교. 국가사회주의의 기치 아래 순수 게르만 민족 재건을 위해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 체제와 결정론적 사관과 투쟁을 원동력으로 사회진보의 명분 아래 자행된 스탈린의 ‘대공포 정책’의 비교는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소련의 폐쇄정책으로 인해 본격적인 연구가 불가능했으나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역사적 사실들이 사료와 더불어 공개되면서 잔혹한 두 체제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프랑스사회에서 스탈린 비평은 공산주의를 왜곡시킨 하나의 ‘정책’으로 비판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마르크스주의에서 문제점을 찾지는 않았다. 특히 프랑스에는 소수파이기는 하지만 공산당이 존재하고 많은 지식인이 마르크스주의자이기 때문에 나치즘과 공산주의 비교는 금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1995년 역사학자 프랑스와 퓨레가 ‘망상의 과거, 20세기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시론’을 발표해 공산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이어 1997년 10명의 교수들이 공동으로 ‘공산주의 흑서(黑書), 범죄 탄압 공포’를 냄으로써 이 금기는 상당 부분 허물어지게 됐다.
지난해 12월 출판된 이 책 ‘스탈린주의와 나치즘, 역사와 평판 비교’는 이런 금기 해제 분위기에서 나왔다. 게다가 거의 동시에 마크 페로의 ‘나치즘과 공산주의, 세기의 두 체제’, 티에리 블론의 ‘적과 갈색, 세기의 악’이 출간돼 양 체제 비교 연구에 불이 붙었다.
프랑스 국립연구소에서 ‘현대사’ 총서를 맡고 있는 앙리 루소의 감수 아래 각 방면의 전문가들이 공동저술한 이 책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스탈린과 히틀러 두 독재체제의 정권 담당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 행위, 강제수용, 탄압, 인종차별주의 등에서 유사성을 찾고 당시 정책에 대한 소련과 독일 두 사회의 반응을 비교 분석한다. 2부에서는 동유럽 체제 붕괴를 비롯한 각국의 공산주의 체제의 종말을 논한다.
이 연구들은 통계학적 방법을 이용해 두 체제의 정확한 현상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나치즘의 토대가 된 사상에 대한 체계적인 비교연구 덕분에 앞으로 지식인들 사이에 긴 논쟁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조혜영(프랑스 국립종교연구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