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지휘·상트 페테르부르크 스테이트 아카데믹 카펠라 콰이어 & 심포니 오케스트라 / 인튜이션 클래식스) ★★★★☆
그리스의 '국민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로부터 선뜻 떠오르는 인상은 애잔함이다. 그것은 아마도 메조소프라노인 아그네스 발차의 애잔한 목소리에 실려 흘렀던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지극히 파편적이고 부분적인 것이다. 도리어 테오도라키스의 본령은 정통 클래식이며, 그의 정신적 본향(本鄕)은 그리스 정교회다. 이 곡 '레퀴엠'은 그 본향으로의 회귀, 혹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확인이다. 그는 교회에서 울려퍼지던 다성부 음악(Polyphony)의 지극한 아름다움과 성스러운 이미지를, 어린 시절 처음 접한 이후 끝내 잊지 못했노라고 고백한다. 비록 '카시아니'(Kassiani·1942) 이후 40여년의 망각기가 있었지만, 1982년의 '성찬식'(Divine Liturgy), 그리고 이 작품 '레퀴엠'(1984)으로 결국 그 부채감을 던 셈이다.
레퀴엠의 첫 인상은 지극히 평온하다. 선율이나 구성에서 특별한 파격이나 충격은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도 유럽의 음악적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좀더 꼼꼼히 들어보면 작지 않은 파격이 감지된다. 바로 여성 솔로이스트와 어린이 합창단의 기용이다. 이들은 정교회 음악, 특히 레퀴엠에서 금기시되는 진용이다. 테오도라키스는 설명한다. "나는 어린이들의 천진하고 생동하는 목소리를, 죽음에 직면한 생명의 공격적 현현(顯顯)으로 상징하고 싶었다"라고.
테오도라키스 자신이 직접 지휘한 연주여서 더욱 치밀한 조형감과 완성도를 지니는 듯하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솔로이스트들 간의 화합도 나무랄 데 없다. 작품 자체의 구성과 깊이, 철학적 의미 또한 그보다 앞선 대작곡가들의 레퀴엠보다 못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김상현<동아닷컴 기자>dotco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