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하게 생일파티를 벌이는 일가족. 오늘의 주인공인 딸이 촛불을 끈다. 훅-. 그런데, 이런. 너무 세게 불었나 보다. 촛불이 대머리 아빠의 얼굴에 옮겨 붙었다. 으아아…! 불덩이 얼굴의 아빠가 급히 화장실을 찾는다. 그러나… "여보, 거긴 침실이야…. " 아내의 표정이 절망스럽다. 삐뽀삐뽀….
고양이가 죽었다. 슬퍼하는 어린 아들. "그만 마당에 묻어주자." 엄마가 위로한다. 땅을 판다. 윽! 시체가 나타난다. 다른 곳을 판다. 또 암매장된 시체. 시체. 시체…. "아무렴 나비 하나 묻을 여유가 없겠니?" 그리고 엄마는 꿋꿋이 다른 곳을 파헤친다.
만화가 양영순 신작 '기동이'에서 펼쳐보이는 '엽기적' 상상력은 여전하다(출판사 이름도 익살맞다. 소리나는 대로 읽어볼 것). 몰(沒)상식적인, 혹은 탈(脫)상식적인 줄거리. 굵고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인 터치. 곳곳에서 빛나는 해학과 풍자.
그러나 성인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누들누드》시리즈의, 진솔하다 못해 질펀하기까지 한 성 담론은 《기동이》에 와서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고추'를 내놓고 다니는 어린아이(기동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기 때문일까. 신문에 연재된 작품들의 모음이라는 한계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든 《누들누드》시절의 발랄한 성적 상상력과 담론을 보여주는 작품은 'TV 중계' '제임스 본드' '어떤 도덕' '승강기' '항상'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렇다고 해서 양영순 특유의 풍자정신이나 해학이 탈색됐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관심이 성으로부터 일상 생활의 여러 부면(部面)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해석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채권자와 이를 피하려는 채무자, 자살을 기도하는 직장인(혹은 실직자?), '야한' CD를 찾는 젊은이, 벤치 위에서 잠자는 취객 등 그의 렌즈에 잡힌 세상의 풍경은 다양하다. 그 안에서 찾아내는 현실의 누추함. 그러나 썩 어둡지만은 않다.
양영순은 아직 《누들누드》의 압도적 성공이 주는 중압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이 시리즈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비디오 대여 열풍을 주도하기도 했다). 《기동이》는 그 중압감을 벗고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기 위한 그 나름의 절박한 시도인 것.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는 만족스러운 편이다.
김상현<동아닷컴 기자>dot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