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번역해서 출판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지만 예외도 없지 않다. ‘가장 위대한 세대’는 1년이 넘게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지만 해외 번역출판실적은 미미하다. 하긴 외국인들에게 미국의 애국심 고취가 무슨 흥미를 줄까. 후속편인 ‘가장 위대한 세대는 말한다’는 편지나 글 모음인데도 전편의 명성에 힘입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미국판 ‘우동 한그릇’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은 30년대의 대공황시기와 40년대 2차대전 시기에 고생했던 세대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다. 그들이 겪은 30년대와 40년대를 통해 미국이 세계 최강의 부국으로 도약한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하지만 그 세대의 개인들이 굶주림과 사회불안을 넘어온 조그만 이야기들은 전쟁영웅들의 그늘에 가려, 또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후의 반전운동과 히피문화에 가려 잊혀지고 무시 당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부와 평화는 모두 이 분들 덕이다. 이들 세대가 정직, 우정, 애국 이런 단어를 말할 때의 자연스러움을 우리는 모른다”
NBC의 고참 앵커인 저자의 이 메시지는 많은 미국사람들에게 ‘진실을 담고 있다’고 받아들여진다. 전쟁미망인들로부터 여군, 흑인병사, 장군들까지 50여명의 고생담을 담은 이 책은 미국인들이 향수를 느끼고 있는 20세기의 한 시기에 대한 자부심을 잘 보여준다.
한국에는 CIA 근무 경력의 보수파 대통령으로 알려진 부시의 일화도 그렇다. 미국 4백대 가문의 하나로 꼽히는 부잣집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조지 부시는 태평양전쟁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입학도 미루고 공군에 자원입대, 전투비행사가 된다.
당시 상원의원이던 아버지는 아들을 안전한 비전투 보직으로 빼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는 일본군 폭격에 나섰다가 태평양에 추락,구조되기까지 바다에서 하루를 헤엄쳤다.
재미있는 것은 그 뒤다. 전쟁체험에 대해 과묵한 그에게, 바다에 떠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어머니가 허풍떨지 말라고 했는데….” 하며 머뭇거리다가 아주 김빠진 대답을 한다. “임무, 명예, 국가, 뭐 그런 생각이 났지요.”
뒤이어 참전용사들의 복지혜택 요구에 대해 묻자 그는 “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군대에서 인생에 대해 많이 배웠을 겁니다. 지나치게 요구해서는 안되겠지요”한다.
정치가로서는 지나친 눌변이요 고지식이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미국 상류층 가문의 정신적 절제력은 눈에 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미국 중고교에서 역사시간의 부교재로 채택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영준(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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