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고고학 "6·25 격전지도 유적" 첫 시도

  • 입력 2000년 2월 1일 19시 54분


‘전쟁 고고학’. 전쟁터에서 전사자의 유해와 관련 유물을 발굴하는 학문. 출토 유물 연구를 통해 당시의 전황과 정치 사회 문화상을 복원해내는 특수 분야다. 아직은 낯선 용어지만 이 전쟁고고학이 학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전쟁고고학의 배경〓관심의 계기는 6·25 발발 50주년을 맞아 육군본부가 추진 중인 ‘6·25 전사자 유해발굴’. 육군본부가 고고학자 인류학자의 참여 및 자문을 문화재청과 논의하고 있고 관련 학계 역시 발굴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전쟁고고학이 관심사로 등장한 것이다. 발굴은 올 4월부터 2003년까지. 발굴 지역은 6·25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의 다부동, 경기 김포의 개화산, 경북 경주의 안강, 강원 양구의 백석산과 피의 능선 등.

▽왜 전쟁고고학인가〓전쟁유적에서 유해만 찾아내는 것으론 전쟁의 전모와 정황을 제대로 복원할 수 없다. 군복 조각, 탄피는 물론이고 병사들이 남긴 메모지 한 장도 완벽하게 발굴해야 한다.

그래야만 치열하고 처참했던 전황과 죽음을 앞둔 병사들의 내면심리까지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선 훈련된 전문가가 발굴에 참여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무 학예연구실장(고고학)은 “고고학자가 정식으로 유해 발굴에 참여해야 한다. 전체를 발굴하는 것이 어렵다면 일부지역이라도 전문가가 발굴해야 한다. 그것이 전사자나 역사에 대한 예의”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전쟁고고학〓한국은 전쟁고고학의 불모지. 순수 전쟁유적을 대상으로 한 본격적인 발굴은 한번도 없었다. 더구나 6·25라는 비극적 전쟁을 치렀으면서도 전쟁고고학에 관해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삼국시대 전투유적이나 임진왜란 유적 발굴은 그저 일반적인 차원의 발굴이었을 뿐이다.

일본은 1990년대말 오키나와(沖繩) 2차대전 유적을 고고학자들이 정식 발굴해 만년필 유서 탄피 하나까지 모두 찾아낸 바 있다. 2차대전 유적을 문화유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한국 전쟁고고학의 미래〓물론 고고학자의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참여에 대한 비판도 있다. 6·25 유적이 과연 고고학적 유적인지에 대한 회의론, 인력 부족으로 고고학자들이 발굴에 시종 참여하기 어렵다는 지적 등. 하지만 50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문화재로 생각하는 학계의 통념상, 6·25 유적은 엄연한 문화유산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어쨌든 전쟁고고학이 한국사의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무수한 전쟁으로 얼룩진 한국사, 그리고 한국전쟁 50주년.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점은 전쟁은 엄연한 역사라는 사실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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