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고 있으나 이렇다할 기술이 없는 그에게 일자리는 쉽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 요즘엔 주차관리원이나 아파트 경비직을 알아보고 있으나 그것도 신통치 않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세딸의 학비와 생활비 부담때문에 아내와도 잦은 말다툼을 벌인다는 그는 요즘엔 아예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은행 지점장으로 일하다 역시 98년 명예퇴직한 김모씨(46). 1년여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얼마전 서울 장안평부근에 10여평 남짓 가게를 빌려 순대국밥집을 열었다. 고객이 빌리고 갚지 않은 돈을 대신 갚고 나오느라 퇴직금도 얼마 못 챙긴 그는 퇴직후 기원이나 탑골공원등 시간을 죽이는 곳이라면 안가본 곳이 없다. 더 이상 놀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가게를 열긴 했지만 시원찮다. 뭔가 노하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지만 반응이 없다.
요즘 40대는 죽을 사자 사십(死十)대라는 말을 듣고 있다. IMF체제를 전후해 감원의 집중타깃이 된 한국의 40대들이 오랜 기간 일자리를 잃고 정상위치로 복귀하지 못하면서 계층이 공동화(空洞化)하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50대와 60대가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안정 세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비해 산업사회의 주류계층에 해당하는 40대는 20∼30대에 밀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퇴출세대’로 밀려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말 현재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등록돼있는 재취업 희망자중에서 40대가 41.2%로 가장 많지만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다.
인력중개회사의 한 헤드헌터는 “요즘 잘 나가는 인력은 디지털 마인드가 돼있는 30대”라며 “심지어 어떤 회사에서는 45세이상이면 아예 이력서도 안 받는다”고 전했다.
이들 중에는 노숙이나 자살 등 극단적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4∼6월까지 조사한 노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40대가 36.2%로 가장 많았고 통계청이 발표한 ‘98년 사망원인 통계’에는 40대 사망 원인으로 ‘자살’이 처음 포함되기도 했다.
40대가 사라진 자리에는 20∼30대가 메워지고 있다. 직급파괴 서열파괴가 진행중인 기업체에서 40대가 받는 압박감은 심각하다.
올초 재벌그룹 임원인사에서는 30대 이사가 등장했는가 하면(현대전자) 최고경영진(CEO)들도 40대나 50대 초반으로 대거 짜여져 40대 부차장의 목을 죄고 있다.
작년 정기인사에서 이사승진을 기대했다가 물거품이 된 모 재벌그룹 김모부장(46)은 “위로는 나이어린 상사들, 아래로는 신사고로 무장한 젊은 직원들을 ‘모시느라’ 하루 하루가 피곤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얼마 전 말도 없이 사라진 부하직원을 나무라다 ‘휴가원을 전자결재로 냈었다’는 말에 완전히 ‘왕따’를 당했다”며 “선배 세대들은 경험이 자산이 되었지만 우리가 배운 아날로그 사고는 요즘 디지털 세대를 교육시킬 수도 없고 오히려 변화에 장애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계에서 비교적 40∼50대 과장 차장이 많은 보수적인 기업문화의 롯데그룹도 최근 21세기의 유연하고 젊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 20∼30대를 팀장으로 짤 움직임을 보일 정도다.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40대를 겨냥한 정리해고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모 제약회사는 부차장급 간부사원 20여명을 감축하면서 40대 부장급 사원은 전원 퇴직시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근로자 100명이상 기업 286개사를 상대로 ‘고용관리실태’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기업들은 회사내 과잉 인력 세대로 40대(38.7%)를 1순위로 꼽았다.
이들은 벤처가 주도하는 부의 창출에도 소외되고 있다.
1500여 벤처기업들이 몰려있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 주축세대는 20∼30대로 40대이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모 그룹 부장 김모씨(45)는 “최근 벤처업체로 옮길까해 이곳저곳을 알아보았는데 사장부터 직원들 나이가 보통 20∼30대여서 채용된다해도 버티기가 힘들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 전문가 제안 ▼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인체에서도 허리가 중요하듯 세대의 허리인 40대가 사장되면 사장에 버금가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며 “일하려는 의지가 있고 경험이 있는 이들의 한번 낙오가 영원한 낙오가 되지 않도록 사회적 쿠션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강원대 한경구교수(문화인류학)는 “일자리창출보다는 부조에 치우친 지난 2년간의 실업정책을 이즈음에서 전면 재검토해 40대의 재취업을 위한 치밀한 아이디어와 실행이 필요하다”며 “뭉뚱그려 일자리만 찾는데 급급하지 말고 개개인 입장에서 충분히 상담한 후 알선하는 정책을 펴야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학교 최재성교수(사회복지학)는 “아무리 디지털이 대세라 하더라도 우리 경우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보니 한창 일해야할 40대들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코드를 배우고 익히는데 벅찰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경제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의 40대들은 눈앞의 업무에 급급했지 언제 재교육 한 번 제대로 받아봤느냐”며 “‘사람’말고는 팔 것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 40대의 퇴출은 국가적 낭비이므로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운다는 차원에서 정부와 기업은 이들을 위한 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톨릭대 정무성 교수(사회복지학)는 40대들에게 ‘휴먼 서비스’분야로의 도전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재교육 재취업시스팀도 이런 식으로 펴야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변화속도가 빠른 디지털 시대에 경제 분야에서 40대가 다시 적응하기란 사실상 힘들다”며 “상담분야나 컨설팅 사회사업등 휴먼서비스 분야는 40대의 경험과 노하우를 잘만 활용한다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쪽”이라고 권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