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주부입니다. 딸아이가 이번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나서 행동이 이상해졌습니다. 아마 자기 성적으로는 꼭 합격하리라고 믿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막상 떨어지니 충격이 큰 것은 백번 이해합니다. 그래도 말도 안 하고 먹지도 않고 전화도 안 받고 하루종일 제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부모로서 정말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분입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부)
▼ 답▼
먼저 위로의 말씀부터 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자식 일이 잘못되면 부모로서 그보다 더 힘든 것도 없지요. 그러나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역시 시험에 떨어진 당사자가 아닐까 싶군요. 감당하기 어려운 실패와 상실을 겪게 되면 누구나 먹고 자고 말하고 하는 일상적인 생활조차 거부하고 싶을 만큼 큰 좌절에 휩싸이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에는 혼자 가만히 놓아두기만 해도 좋겠는데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그 반대의 행동을 취합니다. 절대 안정은 신체적 쇼크 상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이 심할 때도 꼭 필요한 조치입니다. 사람들은 주변의 누가 신체적으로 다쳤을 때는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정신적 아픔을 겪을 때는 도무지 그러려고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자기 말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정신적 힘이 약하다느니 하면서 못살게 굽니다. 하지만 정신적 쇼크가 클수록 한 생명체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빼고는 모든 자극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울고 마음껏 자고 마음껏 홀로 있고 싶다면 그렇게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자연의 한 치유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고 우울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양창순(양창순신경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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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기자>y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