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성폭행 심리스릴러 '치명적 선택'

  • 입력 2000년 2월 9일 20시 01분


성폭행을 소재로 한 연극이 무대에 올려진다. 극단 신화의 ‘치명적 선택’(원제 Extremities). 미국 극작가 윌리엄 마스트로시모네는 1978년 성폭행을 당한 뒤 평생 동안 비참하게 살았던 메리라는 55세의 여인에게서 가슴아픈 고백을 듣고 이 희곡을 집필했다.

메리는 강간범을 법정에 세웠다가 범인의 보복과 협박으로 직장도 포기하고 이름과 신용카드 번호까지 바꾸었으며, 30년 동안 여러 지방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윌리엄은 “민주주의의 종주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에서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당시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를 밝혔다.

92년 ‘메조리의 전쟁’이란 이름으로 이 작품을 원작 그대로 무대에 올렸던 연출가 김영수가 이번에는 한국적 상황에 맞춘 ‘심리 스릴러’로 번안 연출했다.

무대는 경춘국도변의 한적한 산기슭의 도자기 작업실. 세 명의 여자가 사는 이 곳에 어느 날 정체 불명의 사나이가 나타나 민경을 성폭행한다. 살충제를 뿌려 겨우 위기에서 벗어난 민경은 사내를 도자기 굽는 화로에 가둔다. 이 때부터 세 여자와 사내의 치열한 심리극이 펼쳐진다.

“짐승 같은 인간을 도자기 굽는 화로에 불태워야 한다”(민경) “결혼도 앞두고 있는데 덮어두고, 풀어주자”(주연)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인영).

쇠사슬에 묶여 화로 안에서 소리치는 성폭행범은 세 여자를 이간질하고, 때로는 동정을 구걸하면서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치명적 선택’을 한다. 파렴치하고 쓰레기같은 범죄에 대해 모르는 척 넘어가지 않고 여성으로서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

박인서 한범희 최준용 권나연 이정인 등 10년 이상의 무대경험을 가진 배우들이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로 심리극의 진수를 보여준다.

19∼3월12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문예회관 소극장. 월 3시, 화수목 7시반, 금토일 4시반 7시반. 1만5000원. 02-923-2131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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