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赤字(적자)

  • 입력 2000년 2월 17일 19시 40분


조물주가 인간에게 내린 축복 중의 하나가 색깔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물의 윤곽뿐만 아니라 아름다움까지 느끼게 됐으니 또 하나의 특권을 지닌 셈이다.

붉은 색을 뜻하는 한자 赤은 大와 火의 결합으로 ‘큰 불’, 곧 훨훨 타오르는 장작더미의 불이다. 시뻘겋게 이글거려 赤은 ‘붉다’라는 뜻을 갖게 됐다.

색깔이 지니는 상징성은 무척 다양하다. 五行(오행)에서 赤色은 불을 상징하며 계절로는 여름, 방향은 남쪽, 五臟(오장)으로는 心臟(심장)을, 감정으로는 歡喜(환희)를 뜻한다. 중국인들은 악마를 쫓는 힘이 있다고 여겨 무척 숭상한다.

赤色은 激情(격정) 過激(과격) 暴惡(포악) 危險(위험)을 뜻하기도 하는데 후에는 빨갱이 또는 공산당을 상징해 우리에겐 남다른 색깔로 남아있다.

붉은 것에는 갓난아기의 몸도 있다. 여기서 赤子(적자·갓난 아기)란 말이 나왔는데 갓난아기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므로 赤은 ‘텅 비다’는 뜻도 있다. 赤裸裸(적나라)니 赤貧(적빈·찢어지게 가난함) 赤手空拳(적수공권) 등은 그런 뜻이다. 또 赤手成家(적수성가)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성공한 경우다.

赤字라면 ‘붉은 글자’다. 帳簿(장부)상에 붉게 쓴 글자로 굳이 붉은 색으로 쓴 것은 앞서 말한 ‘텅 비다’는 뜻에서다. 지출이 수입을 초과한 경우에 의도적으로 붉은 글씨로 써 주의를 喚起(환기)시키고 ‘부족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 반대의 경우는 검은 글씨로 표기했으니 이것이 黑字(흑자)다.

한국의 무역수지가 26개월 간의 흑자행진이 끝나고 赤字를 기록한 모양이다. 이럴 때일 수록 열심히 일하고 아껴쓰는 수밖에 없다. ‘治家以勤儉爲本(치가이근검위본·집안 살림은 근검절약이 근본).’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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