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존재를 믿는가…종교철학계 '과학적해석' 수용

  • 입력 2000년 2월 21일 19시 42분


‘영혼’ 또는 ‘불멸’은 신학이나 종교철학 또는 심리철학의 중요한 문제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결론이 나지 않는 난제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는 종교철학자와 심리철학자들 사이에 ‘영혼’ 또는 ‘정신’을 둘러싼 논쟁이 활발하다.

‘영혼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에 심리철학자는 ‘영혼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에 관심을 갖지만 종교철학자는 그 대답의 도덕적 함의나 신학적 함의에 관심을 갖는다. 심리철학의 연구와 종교의 가르침 사이에는 분명히 팽팽한 대립이 있다. 이것은 인간이 육체와 두뇌로 구성된다는 과학의 주장과 이에 반대하는 종교적 도그마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보스턴대 철학-종교연구소는 양측으로부터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있다. 그래서 올해는 ‘만일 내가 죽는다면-삶, 죽음, 그리고 불멸성’이라는 연속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이제 많은 종교철학자들은 심리철학의 주도적인 최신 경향과 과학의 성과를 수용하면서 영혼과 육체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이들은 영혼의 불멸성이나 신의 계시 등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영혼을 배제하고 ‘영혼의 대화’를 육체나 두뇌의 작용으로 환원시켜 설명한다. 풀러신학교의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최근 발간한 ‘도대체 영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Whatever Happened to the Soul?)’나 호주의 철학자 피터 포리스트의 ‘초자연이 없는 신(God Without the Supernatural)’ 등은 바로 그런 주장을 담은 책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할 경우 영혼을 전제로 한 사후의 심판이나 영생의 문제 또는 도덕적 통제 등을 합리화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종교철학자들은 ‘정신’과 ‘육체’라는 이원론적 실체의 형식을 고수한다. 그들은 실체이면서 비물질적인 영혼의 관념을 부정한다면 사후세계를 비롯해 ‘정신’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윌리엄 해스커의 최신작 ‘새로운 자아(The Emergent Self)’와 3월 출간 예정인 J P 모렐랜드와 스코트 라이의 ‘육체와 영혼-인간 본성과 윤리학의 위기(Body and Soul: Human Nature and the Crisis in Ethics)’ 도 환원적 유물론에 반대하고 이원론적 실체의 형식을 지지하는 책이다.

서양철학자들만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로빈 쿠퍼의 ‘진화하는 마음-불교, 생물학, 의식(The Evolving Mind: Buddhism, Biology, and Consciousness)’은 최근의 두뇌연구와 불교사상의 양립가능성을 다룬 것이다. 불교와 현대과학을 병렬시키는 것과 기독교신학의 틀 안에 과학을 집어 넣으려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육체와 영혼에 대한 현대과학과 전통적 견해 사이의 논란이 동서양의 철학을 가로질러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편이 학계의 호응을 얻으며 승리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최신 과학의 성과를 수용하는 심리철학의 지배적인 경향에도 불구하고 종교철학에서는 아직도 영혼과 사후세계에 대해 보다 전통적인 생각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종교철학의 오랜 전통이다.

-Philosophy News Service(Paul Pardi의 ‘Philosophers War over the Soul’) 참고-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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