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가 쓴 인물평전 화제…"허균은 서자 콤플렉스"

  • 입력 2000년 2월 21일 19시 42분


정신과 의사들이 쓴 역사인물 평전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역사학자들만이 역사인물을 평가할 수 있다는 통념에서 볼 때 이것은 하나의 ‘충격’이다.

지난해말 출간된 신용구 안양중앙병원 정신과장의 ‘콤플렉스로 역사읽기’, 최근 나온 버팔로 뉴욕주립대 정신과 이중오교수의 ‘이광수를 위한 변명’ 등. ‘콤플렉스로…’는 국내 최초의 정신분석학적 역사인물평전. 신과장은 조만간 또다른 인물 평전을 낼 예정이다.

학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역사전문학술지 ‘역사비평’의 김윤경 편집장은 “그동안 이같은 접근이 너무 부족했다. 앞으로 이에 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한다.

왜 지금 정신분석학적 접근인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주진오 상명대교수(한국사)는 인간이 소외됐던 정치사회제도 중심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주제사(主題史) 미시사(微示史) 에 대한 관심 증대 등을 그 배경으로 든다.

정신분석학적 접근의 특징은 한 인물의 내면 심리를 집중적으로 파고 든다는 점. ‘콤플렉스로…’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이 가져야했던 콤플렉스에 초점을 맞춰 역사인물 16인을 분석한다. 아버지를 위해 아들을 죽인 고구려의 유리왕은 효 콤플렉스, 가야 출신인 김유신은 출신성분 콤플렉스, 어머니의 불륜 때문에 고민했던 고려 목종은 외디푸스 콤플렉스, 서자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허균은 서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학대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고 설명한다.

‘이광수를 …’은 이광수를 친일파로 단정지어온 흑백논리는 살아 남은 동시대인들의 집단적인 콤플렉스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나는 이광수만큼 친일을 하지 않았다’는 심리적 보상을 받기 위해 이광수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이교수는 “이광수의 친일은 무죄”라고 주장한다.

이같은 접근법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우선 긍정론. 한 인물을 좀 더 풍요롭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강창일 배재대교수(한국사)는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적으로 역사인물을 분석하는 것은 역사학을 자극하고 그 수준을 높여준다. 이런 접근이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의 내면에 집착하다 보니 시대적 역사적 상황을 무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강교수는 “이광수의 친일을 다시 볼 수는 있지만 ‘무죄’라고 미리 정해놓고 접근해선 안된다. 정신분석만으로 한 인물에 대해 결론을 내려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주교수 역시 “역사학은 궁극적으로 시대 속에서 사람을 보는 것이다. 사람을 통해 한 시대를 규정하는 위험하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신과장은 “우리 역사를 보면 시대적으로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민족 구성원에게 공통된 무의식이 깔려 있다는 말이다. 집단 무의식의 원형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바라보면 역사를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엇갈리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문제제기로 평가받는 정신분석학적인 접근. 이제 중요한 것은 주경철 서울대교수(서양사)의 말처럼 “전통적인 역사분석과 정신분석학적인 역사분석의 조화”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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