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의 남성입니다. 얼마 전 건강이 나빠져 수술 끝에 다행히 회복되었습니다. 병원에 있으면서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제부터는 누구보다도 아내에게 잘 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아내가 그런 저를 밀어내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집안일도 도와주고 다정하게 애정 표현도 하고 싶은데 아내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답 ▼
먼저 그다지 잘못된 것은 없다고 말씀드려야겠군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중년 부부들이 비슷한 과정에 놓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중년기에 이르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일종의 성역할 바꾸기라는 중대한 과제가 가로놓이게 됩니다.
중년의 남성들은 지금까지 일이나 사회생활에서 충족시켜 왔던 친밀감의 욕구를 가족과 아내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아내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고 또 자신을 돌보아주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중년기 여성에게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나이가 들면서 여자라는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둘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성들은 오히려 사회적 성취나 개인의 발전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제까지 가부장적인 권위만을 내세우던 남편에 대해서도 더 이상 그 권위를 인정해줄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에 남편이 느닷없이 집안일을 거들고 전에 없이 다정하게 애정표현을 한다고 나서니 냉담해질 수 밖에요.
따라서 중년기 부부들은 서로의 역할 바꾸기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의 걱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를 나누다 보면 친밀감과 애정은 저절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영순<양영순신경정신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