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LG애드의 프로듀서 양시환씨(31·서울 마포구 공덕동)는 러시아어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부터 러시아의 시인이자 희곡 작가인 마야꼽스키의 삭발이 부러웠다. 아방가르드 풍의 작가였던 만큼 ‘파격’을 서슴지 않던 마야꼽스키의 까까머리가 늘 그의 가슴 한 켠에 있었다.
그렇지만 용기가 없었다. 머리를 자를라치면 먼저 ‘야쿠자처럼 보이지 않을까’ ‘불량해보일텐데…’하는 걱정에 멈칫해야 했다.
지난 달 3일 사소하지만 큰 계기가 찾아왔다. 2년 전 시작했던 검도를 꽤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그 날따라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것.
‘그래, 정신이 산만해진 탓이야….’
그날 머리를 밀었다. 잦은 술자리 등 생활에 절제를 잃었던 게 사실이었다. 머리카락은 ‘세속’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정열의 상징. 삭발하면 스님처럼 세속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민머리로 세상을 대면한 첫 느낌은 뿌듯함에 앞서 머리가 너무 춥다는 것이었다.
이후 생활에 기대 이상의 변화가 생겼다. 머리카락이 없으니(현재 길이는 6㎜) 술집에 갈 생각도 나지 않았다. 광고주에게 새로 만든 광고를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 그들은 두고두고 양씨에게 관심을 보였다. 하다못해 집안 청소에도 머리카락을 주을 필요가 없으니 하루 15분 이상 시간을 벌게 됐다.
단 하나 불편한 것은 주위의 관심. K상사는 “회사에 불만있냐”고, L씨는 “너, 무슨 일 있었냐”고 캐물었다. 하지만 ‘동자승같다’는 칭찬을 듣는 현재의 스타일을 한동안은 지킬 생각이다.
그래도 자꾸 “왜 머리를 밀었나요”라고 물을 때면 양씨는 대답한다.
“화가 고갱이 서른넘은 나이에 가족을 버리고 화가가 된 것처럼, 사실 우리 모두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잖아요.”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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