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점심식사 르포]"부실한 도시락…엄마 너무해요"

  • 입력 2000년 3월 3일 19시 17분


“부모들이 자식 공부에 쏟는 정성의 10분의 1만 도시락에 쏟아도 이 지경은 아닐 겁니다.” 한창 자라는 시기에 있는 중학생의 점심을 영양학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본보 취재팀이 3일 숙명여대 한영실(韓榮實·식품영양학)교수와 함께 서울시내 C여중 1학년 5반 교실을 찾았다.

▼영양불균형 '속빈강정'▼

한교수는 진단결과를 ‘충격적’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학생들의 점심식사 광경을 지켜본 한교수는 “학생들의 영양불균형이 심각하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이런 식사패턴은 청소년을 영양불균형으로 허우대만 멀쩡한 ‘속 빈’ 강정으로 만든다”고 우려했다.

우선 끼니를 거르는 학생이 너무 많았다. 이 학급 학생 30명 중 도시락을 아예 싸오지 않은 학생은 9명. 아침을 거르고 나온 학생도 14명이나 됐다.

‘엄마가 피곤해서, 출근하느라 바빠서, 또는 반찬이 마땅찮아서 사먹으라고 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 학생들 중 일부는 학교 밖으로 나가 컵라면을 사먹거나 친구들의 도시락 일부를 나눠 먹었다.

도시락을 가져온 21명의 식단도 형편없었다. 햄버거 1개를 가져온 학생이 1명 있었고 나머지도 반찬이 대부분 1, 2가지에 불과했다. 그나마 소시지, 동그랑땡, 햄, 참치통조림, 꼬마돈가스, 치킨 등 인스턴트 식품이 대부분.

재료를 갖고 집에서 조리한 반찬은 김치와 달걀부침이 전부였다. 그나마 그것도 각각 3명뿐이었다. 김치볶음밥을 싸온 1명은 아예 반찬이 없었다.

청소년기의 필수영양소인 칼슘, 비타민을 보충해주는 생선이나 시금치, 콩나물 등 채소류를 반찬으로 가져온 학생은 단 1명도 없었다. 혼식을 한 학생은 2명.

도시락의 크기도 문제. 중학생은 한끼에 200g 이상의 밥을 먹어야 하는데 거의 모두가 150∼160g 크기의 도시락을 사용했다.

▼반찬 대부분 인스턴트식▼

한교수는 또 “아침 또는 점심을 굶거나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 학생은 방과후 인스턴트 식품으로 군것질을 해 저녁 역시 부실하게 먹게 된다”며 “이런 습관은 결국 학생들 입맛을 자극적이고, 염분이 많고, 영양소 없이 열량만 높은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기기자> 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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