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조(55)시인의 새 시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속으로 발을 들여놓아 본다.
가장 앞서 우리를 맞는 것은 동물 식물과 목숨없는 사물들의 모습이다. 고등어, 머위, 절간의 목어….
이들이 우리를 미소짓게 한다. 요컨대, 이런 식이다.
‘뻣뻣한 몸이 똑 서슬 퍼런 칼 같다/(…)/죽어서도 몸가짐 의젓한 고등어가/설마 누구를 찌를 마음을 먹었으랴/그렇게 본 내 마음이 멋쩍다/다 익은 살을 뜯어먹을 나보다/등급이 몇 수쯤 위라는 생각/그래서 이름까지 高等魚?’(고등어)
‘지난 봄 한철 그 슬하엔 문하생이 많았다 민들레 뱀딸기 명아주 질경이(…)이듬해 또 봄이 왔으나 머위의 모습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일찍이 시들어 종적이 묘연하던 질경이만 <머위 추모 일주기>라고 쓴 푸르고 질긴 잎을 치켜 들었을 뿐’(머위 씨 이야기)
정호승 시인이 ‘의인화의 명수’라고 일컬은 그 짭짤한 풍자의 진면목을 지나면, 가만, 텅 빈 마음 구석의 소슬바람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라, 그 행간 사이로 잔잔한 멜로디가 흐르고 있다.
거의 전생애를 고독에 바치고도 보상받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쓸쓸한 위무일까. ‘말을 버리고 속울음도 감추고/땅속에서 십년을 근신하다 발표한/미완의 출세작 한 곡만으로/여름을 제압하는 매미들이여!’(각설이 타령)
그렇구나. ‘고등어’도 ‘파란만장 난바다를 헤쳐온 생이 못내 서럽고 억울할 텐데, 육신을 어찌/저토록 마음 편히 보시’한 존재에 대한 연민의 노래이고, ‘머위 씨 이야기’도 인간 관계의 덧없음에 관한 노래에 다름아니었던가 보다.
그러고 보니 여기 저기에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고개를 푹 파묻고 있다. ‘서기 79년 8월 24일/폼페이 최후의 날/원형경기장 일반석에서/벤허의 전차 경주를 보다가/화산재 쓰고 하얗게 응고된 남자/어쩌면 그도 하릴없이 명퇴한 전차 공장 노동자였을까?’(웅크린 남자)
아니면, 아파트 단지 어린이 놀이터에서 하릴없이 손주놈 그네나 밀고 있는 반백의 사내(그네)를 보라. 아하,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가 거쳐온 어려움의 질곡이 시인의 가슴속에 짙은 안쓰러움의 한숨을 남겨두었나 보다.
‘아무리 밀어도 그네는/다시 제자리로 내려올 것이다’라고 말하며, 시인은 섣부른 위무를 미루어 둔다.
그런데도 그의 시행이 햇살로 채워지는 것은 무엇일까. 남루한 존재에 대한 공감. 그것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따스해 질 수 있기 때문일까.
70년 등단한 시인이 97년 ‘귀로 웃는 집’이후 3년만에 내놓는 다섯 번째 시집이다. 민음사 펴냄.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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