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어떡하죠]유성경/'사춘기 위기' 사랑이 묘약

  • 입력 2000년 3월 12일 19시 49분


아이가 제대로 자라려면 엄부자모(嚴父慈母)가 필요하다는 옛말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양분이 ‘사랑’과 ‘가르침’임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요즘은 엄모자부(嚴母慈父)가 더 많아져 부부의 역할이 바뀌었다.

부모는 자녀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이 홍역이 얼마나 오래 갈지에 대해 불안하고 긴장하게 된다. 그토록 미더웠던 자녀를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고, 더 나빠지기 전에 아이를 ‘잡기 위해’ 무조건 통제와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게 되기 십상이다. 이렇게 되면 부모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의 젖줄은 말라붙고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지혜의 샘은 고갈된다. 이 때부터 자녀와의 피곤한 신경전으로 가정에서 평화가 사라진다.

사춘기 자녀들은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 할 때 더할 수 없이 거칠고 난폭해진다. 그리고 물리적인 힘으로 누르려 드는 부모에 대한 분노로 가출이나 학교중퇴 등으로 반항을 한다. 아이가 일단 이렇게 놀랄 만한 일을 저지르면 부모들의 불안은 배로 증폭돼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확신을 잃고 완전히 무기력해진다. 늦게 들어오는 아이를 쥐잡듯이 윽박지르기도 하고, 눈물로 호소해 보기도 하고, 무심한 척 그냥 내버려두기도 한다. 아이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을 미끼로 구슬려 보기도 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길렀다고 생각한 자식이 고마워 하기는커녕 원수처럼 으르렁거리고, 부부간에는 서로 탓하느라 도무지 생산적인 대책이 나오질 않는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모는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하고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눈치만 살피게 된다. 어떤 부모들은 상담자에게 아이의 귀가시간, 옷차림, 친구 관계 등에 대해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지를 어린아이처럼 묻는다. 가정의 문화, 부모의 가치관, 아이들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과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부모가 기준을 잃고 불안해 하며 무조건 억누를 때, 아이들은 반항하기 시작하고 자녀들도 극심한 불안 속에서 방황의 시간을 불필요하게 연장하게 될 것이다.

겉으로는 강력하게 독립을 선언한 청소년 자녀들의 내심에는 그 어느 때보다 부모의 사랑과 확신에 찬 가르침을 갈구한다. 먼지 쌓인 사진첩을 꺼내보며 푸근했던 시절로 되돌아가 보자.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 보라.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절대로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될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아이들에게 사랑의 젖줄을 넉넉히 대주고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는 엄부자모 혹은 엄모자부가 돼야 한다.

유성경(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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