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서는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와 일본 다이쇼(大正)대가 공동 진행 중인 개성시 용흥동의 고려 영통사지(靈通寺址) 발굴.
영통사는 고려의 대표적 사찰. 천태종의 시조인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출가해 불법(佛法)을 배웠던 곳으로, 대각국사비가 유명하다.
이번 사찰터 발굴은 1959년 개성 불일사지 발굴 이후 약 40년만의 일. 발굴 지역이 3만㎡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 발굴이다. 내년 발굴을 마치면 일본 천태종의 지원으로 본격적인 사찰 복원에 들어갈 계획이다. 내년이 의천 900주기라는 점을 고려해 의천 관련 유적을 먼저 복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사회과학원이 최근 펴낸 발굴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발굴을 시작한 것은 98년 5월. 이 중 대각국사 의천 묘역(墓域) 발굴이 특히 눈길을 끈다. 이 묘는 의천을 화장하고 나서 그의 유골을 매장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일제시대 초 이미 도굴되어 별다른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발굴단은 이 묘역에서 제당(祭堂)으로 보이는 건물터를 발굴했다. 북쪽 바위에선 마애불(磨崖佛)을 발견하기도 했다.
북한이 이렇게 40년만에 고려 사찰터를 대대적으로 발굴하는 이유는 무얼까.
한 고고학자는 “북한이 1990년대 단군 조선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이제 그들이 최초의 통일 왕조라고 일컫는 고려로 관심을 돌린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했다. 그는 또 “북한이 최근 개성지역 고려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