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마르탱 게르의 귀향'

  • 입력 2000년 3월 14일 19시 34분


▼'마르탱 게르의 귀향'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 지음/양희영 옮김/지식의풍경 펴냄/247쪽 9500원▼

‘고양이 대학살’이란 책을 기억하는가. 논문을 통해 18세기 프랑스의 역사, 지리, 문화상황을 새롭게 해석한 문화사 서적을…. 이 책은 바로 이 ‘고양이 대학살’과 궤를 같이 한다.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책이라면,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주연한 프랑스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그 영화와 같은 내용을 다룬 책이다.

저자 데이비스는 각종 사료들의 빈 공간을 재해석한다. 역사의 실재를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몇 백 년 전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여러 장면들 중의 하나가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다.

16세기 프랑스 툴루즈 고등법원의 한 재판을 기록한 장 드 코라스의 ‘잊을 수 없는 판결’을 단서로 하나의 ‘역사’를 재창조했다. 8년동안 가출했던 마르탱 게르가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사건은 그의 아내가 “돌아온 남편은 가짜 마르탱”이라는 발설로 전개된다. 진위여부 논쟁이 가족을 비롯해 온 마을을 뒤덮은 가운데 고소당한 마르탱, 자신이 진짜 마르탱이라는 주장은 성공에 이르는 듯 했다. 그러나 절름발이가 된 진짜 마르탱이 나타나게 되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진짜 마르탱인가를 추적하는 탐정놀이가 아니다. 진위여부를 가리는 과정에서 아내(베르트랑드)가 고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않는 이중적인 태도 등 주요 인물들의 성격, 사고, 의도들을 바탕으로 역사를 재구성해내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영화보다 훨씬 낫게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불명확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모습보다는 그 인물이 갖고 있는 특질을 추출해냈고 명확하게 드러난 영화의 배경보다는 복잡다단한 당시 프랑스 사람들의 생활상을 깔아뒀기 때문이다.

신은<동아닷컴 기자>nsilv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