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두려우면 움츠러들고….’ (아홉 개의 이야기-어깨뼈)
구부정한 어깨가 보인다. 돌아서서 고개를 숙인 사람들이 보인다. 무심히 남은 희망을 흘려보내고 망연히 그 뒤를 좇는 힘겨운 눈길이 보인다.
작가 한강(30)의 두 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창작과비평사). 상처로 시작돼 서투르게 지속되며 안타까움을 남기는 슬픈 관계학, 외로운 초상들.
·상처
단편 ‘어느 날 그는’에서 출판사 직원 민화는 오토바이 배달원 ‘그’의 뺨에서 트고 갈라진 상처와 피를 보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또다른 단편 ‘아기 부처’의 주인공 선희는 아나운서 상협의, 옷으로 감추어진 화상흔을 본 뒤 그의 흉터와 용기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사랑이란 상대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상대의 흉터를 정면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아픔과 결함을 육체의 상처로 상징해보려 했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관계, 서투른
그러나 그 사랑은 잘 되어나가지 않는다. 선희는 상협의 화상이 몸에 닿는 것조차 괴롭고, ‘이중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작품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에서 아이의 엄마는 남편의 의처증에 못견뎌 집을 버린다. 처음 ‘포용하는 모성’으로 비추어졌던 여성의 관대함은 점차 좌초의 길을 겪는다. 남성의 공격성이 단초를 제공하지만 여인들도 ‘고지식하고 우유부단’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섣부른 화해와 희망을 추구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서로의 아픔을 끝까지 들여다보면,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을 넘어서는 밝은 지점이 있을지 모른다.”
·자유, 갈망
갈등의 단초를 제공하는 요소는 자유에 대한 여성들의 갈망이다. 그 갈망은 뚜렷하지 않고, 새벽녘의 꿈처럼 희미하지만 제어할 수 없는 마력으로 그들을 매혹시킨다.
‘고요히 곁에 누운 남자를 보았을 때 여자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낯선 꿈의 서늘함이 아니라, 별 환한 그 길 위에서 자신이 느꼈던 자유였다.’(아홉 개의 이야기-자유)
모성애가 가정에 대한 구심력으로 작용한다면, 자유에의 갈망은 여인의 마음을 이탈시키는 원심력이다. 여성들은 두 힘이 빚어내는 긴장의 균형 위에 서 있다.
“운명으로부터의 자유, 세상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들은 갈망했다. 인간 속에는 닻을 내리려는 욕망과 닻줄을 끊어버리려는 욕망이 공존한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속의 그들을 다 모른다.”
·사족, 또는
한강은 소설가 한승원의 딸. 오빠인 한동림도 현역 작가다.
“95년 등단 이후에야 아버지께 처음 작품을 보여드렸다. 오빠도 마찬가지. 가족끼리 작품을 보이지만, ‘좋네요’ ‘좋구나’ 외에 항상 다른 말은 없다.”
이번 창작집은 95년의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 98년의 장편 ‘검은 사슴’에 이은 그의 세 번째 책.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