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가 지동설 주장 때문에 종교재판을 받고 나오면서 중얼거렸다고 알려진 말이다. 그리고 이는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과학’이란 주제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이 한 때 얼마나 종교적 권위에 질식당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투쟁하여 현재의 ‘영광된 지위’를 누리게 됐는지가 함축돼 있다. 종교와 과학의 갈등을 당연시하는 이런 관점은 지금 상식처럼 널리 퍼져 우리의 사고방식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의심받지 않는 상식은 항상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와 과학의 필연적 갈등’이란 상식은 엄밀한 점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겠다고 나선 8명의 공동저자가 범상치 않다.
서울대 종교학과의 정진홍 윤원철 김종서교수, 현대물리학과 동양철학의 접점을 탐구해 온 서울대 물리학부의 장회익 소광섭교수, 일찍부터 신과학 연구를 주도해 온 고려대 김용준 명예교수, 천문학과 서양사학을 전공한 관동대 성영곤교수, 그리고 신학자인 성공회대 손규태교수. ‘종교와 과학의 갈등’이란 명제에 ‘불편함’을 느끼며 2년간이나 함께 세미나를 해 왔다는 이들은 관련분야의 일급 필진이다. 이들은 왜 종교와 과학의 대립 명제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면 어떻게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설정하려는 것일까?
이들이 종교와 과학의 대립 명제에 ‘불편함’을 느끼게 됐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종교와 과학이 역사적으로 매우 다양하며 복합적인 상호관계를 이뤄 왔다는 점(성영곤)이다. 따라서 양자 사이의 관계를 대립과 갈등으로만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종교와 과학을 보다 고도의 차원 혹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대립이 아니라 양자의 화해와 통합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화해의 방법은 여러 가지다. 양자가 공유하고 있는 구원론적 동기를 다시 기억해냄으로써(정진홍), 지구적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수용함으로써(장회익), 관찰자와 관찰 대상의 긴밀한 연관성에 주목함으로써(소광섭), 또는 사이버공간의 가상현실이 지닌 성격을 음미함으로써(윤원철), 그리고 현대 환경운동의 종교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김종서), 마지막으로 현실의 이웃에 대한 배려로 양자를 만나게 함으로써(김용준) 종교와 과학은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을 벗어날 수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저자들이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논의하는 수준도 여러 가지다. 인간 존재의 보편적 차원에 대한 탐색이 추구되는가 하면(정진홍, 장회익, 김용준), 기독교와 근대과학의 역사적 연관성에 대한 논의가 검토되기도 하고(성영곤), 특정 종교의 교리가 최신 과학 이론이나 과학 기술적 상황과 부합되는 측면이 거론되기도 한다(소광섭, 윤원철).
이렇듯 저자들의 다양한 관점과 여러 가지 논의 수준을 묶어 주는 것은 종교와 과학을 연관시키려는 ‘소통의 모색’이다. 그런데 저자들이 종교와 과학 간의 대립과 갈등도 아니고 분리도 아닌 통합과 연결을 모색하게 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 책에서 성영곤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종교나 과학이 기존의 권위에 의존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통합의 방법과 저자들이 공통되게 주장하는 종교와 과학의 소통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저자들에게 종교와 과학의 소통을 모색하도록 동기 부여해 준 점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을 보는 관점의 근본적인 변화일 것이다. 과거처럼 ‘의심할 수 없는 객관성으로 사실을 기술(記述)해 주는 것’으로 과학을 파악하는 관점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니지 않는다.
종교의 성스러움을 빼앗은 과학은 여태까지 자신의 성스러움을 치장하는 데 골몰하며 과학의 절대성을 주장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전면 재검토 작업을 통해 과학적 활동에서 과학자가 갖는 중요성이 확인됐다. 이제 ‘과학’의 성스러움은 당연시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과학의 절대성에 기생하던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라는 명제도 흔들리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바로 이 흔들림 속에서 종교와 과학에 대한 새로운 관계 모색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점에서 과학의 권위에 기생하여 자신들의 근본주의 신앙을 정당화하려는 이른바 ‘창조과학’ 류의 입장과 차별성이 드러난다.
전공의 벽을 높이 쌓고 자신의 나태함을 만끽하고 있는 오늘의 대학 풍토를 고려할 때, 이 책은 드물게 전공 영역 사이의 소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저자들이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공동작업의 질적 수준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같은 시도는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되고 권장되어야 할 것이다. 270쪽 1만5000원
장석만(한국종교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