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패션’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인터넷과 첨단기술이 주목받는 디지털 패러다임의 시대에 장식이 치렁치렁 달리고 자수가 놓여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운’ 옷들이 디자인되는 것이다. 대량복제 추세에 저항하듯 ‘나의 중요함’ 혹은 ‘오직 하나’의 이미지를 살리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다.
“미래에는 기계에 지배되고 신종 질병에 고통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감에서 세기말을 보냈다. 새 밀레니엄은 왔고,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인간미 없는 검정색과 흰색,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리즘이 지겨워졌다. 행복하고 밝고 ‘창조적으로 유치한’ 것을 원하기 시작했다.”(동덕여대 의상디자인학과 간호섭교수)
최근 주목받는 아날로그 패션은 1990년대 중후반을 풍미했던 문학소녀 혹은 공주풍의 로맨티시즘과 다르다.
히피풍의 노랑 빨강 연두 핑크 등 색상은 원색적이지만 바탕색으로는 여러 색상을 뒤섞어 쓰지 않는 모노톤이다. 거기에 꽃무늬 프린트나 잎사귀 등 자연미를 강조한 문양과 중국과 인도의 전설을 회상하는 듯한 자수, 구슬장식이 화려하다. 준보석이나 크리스탈 장식도 일반적이 돼버렸다. 손으로 짠 것같은 느낌을 주는 산둥실크, 폴리에스테르 등을 섞어 마직 느낌을 주는 소재가 선호된다.
작년 후반부터 “휴머니즘과 낭만주의로의 회귀”를 외치며 선명한 분홍과 연두색을 새롭게 들고 나왔던 앙드레 김은 최근 구슬과 준보석 장식을 강화했다. 진태옥 박윤수 이영희가 한국적인 화사한 보자기와 자수에서 개념을 따와 의상을 만든 것도 이러한 판세를 암시한다.
가을겨울 컬렉션을 이미 선보인 해외 유명브랜드들도 마찬가지 경향이다. 정 떨어질 정도로 미니멀한 디자인의 대명사인 질샌더가 꽃무늬 프린트를 처음 내놓았고, 샤넬은 히피 스타일의 흐트러짐과 사선으로 내려오는 야릇한 실루엣을 선보여 “그 돈 주고는 사입고 싶지 않다”는 우스개 소리를 터져나오게 했다.
삼성패션연구소 서정미연구원은 “패션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심리를 파고 들기도 한다”면서 “모든 것이 디지털화 테크놀러지하는 현실에서 ‘나는 뒤쳐지는 게 아닌가’하고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상쇄하는 기능을 아날로그 패션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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