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무라카미 하루키 '신의 아이들은…'

  • 입력 2000년 3월 31일 21시 17분


1995년 2월 일본에서 6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났다. 일본열도를 공포에 몰아넣은 고베 대지진이 끝난 후 일본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일본의 유명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51)가 최근 고베 대지진을 모티프로 한 신작소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신초사·新潮社)를 발표했다.

문예지에 ‘지진 이후에’라는 제목으로 연재해온 단편 5편을 다시 손보고 새로 한편을 추가해 엮어낸 첫 번째 연작단편소설로 새로운 문학적 시도가 엿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간 10일 만에 20만부가 팔렸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무라카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미국에 있을 때 걸프전쟁을 경험한 이후 일본이란 무엇인가를 줄곧 생각해왔다”며 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자세로 전환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또 “고베에서 일어난 사건을 픽션으로 쓰되 각기 다른 캐릭터를 3인칭으로 썼다. 과거와는 달리 비유도 상당히 적다”며 새로운 문체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고베 인근지역 출신인 무라카미는 고베를 무대로 한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구체적인 지명도 밝히지 않고 표준어를 사용했지만 이번 단편집에서는 처음으로 관서지방 사투리를 썼다.

6개의 단편은 모두 지진현장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역과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지진에 대한 직접 묘사도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 ‘그 장소는 몇 광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주인공(‘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중)의 말처럼 지진현장에 대한 상상이나 기억이 구심점을 이루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 주인공들은 각각 커다란 상실감을 경험했거나 결손가정 출신이다. ‘UFO가 구시로에 내려오다’의 주인공은 고베지진 뉴스에 충격을 받고 가출한 아내에게 이혼당한 뒤 홋카이도의 구시로를 여행하며 자신을 되돌아본다.‘다리미가 있는 풍경’은 가출해 이바라기(茨城)현에 정착한 한 젊은 여성이 고베 인근지역 출신의 40대 화가와 함께 모닥불의 아름다움에 빠진다는 얘기.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자라난 주인공이 어머니가 고베지역으로 자원봉사하러 간 사이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을 미행하는 하루동안의 이야기를 그렸다. 기존 작품에 새로 추가된 ‘벌꿀파이’에는 무라카미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고베인근 지역 출신인 주인공은 와세다(早稻田)대학 문학부에 진학하고 문예지의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한다. 그러나 아쿠다가와상 후보에까지 올랐다가 수상을 놓친다. 주인공은 또 대학시절 좋아했던 여자를 친구에게 빼앗기지만 그녀가 이혼하자 결혼을 신청하겠다고 결심한다. 과거에 잃어버렸던 여성과 다시 이뤄지는 전개는 이전 작품과 크게 다른 것으로 무라카미의 인생관이 다소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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