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문 '나를 두둔한 악마의…'/차가운 풍자 읽는 재미 더해

  • 입력 2000년 4월 7일 20시 03분


작가 정영문(35)이 장편소설과 소설집을 동시에 선보였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장편 ‘핏기없는 독백’과 세계사가 펴낸 창작집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

96년 등단한 작가는 지난해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 과 중편 ‘하품’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나온 분량보다 더 많은 두 권의 새 책에서 작가는 권태, 차츰 소멸해가는 존재, 무의미한 대화 등 특유의 소재와 수법들을 집요하고 정교하게 반복한다. (괄호 안의 인용문은 단편 ‘어두운 화면 위의 느슨한 말들’에서 인용)

<일상이 보급하는 권태는, 그 자극적이지 않은 권태는, 그것이 제공하는 감미로움에 적응하기만 하면 즐거움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품’ 등 앞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두 책의 등장인물은 무의미한 행위를 거듭하며 이에 만족한다. 단편 ‘내장이 꺼내진 개’의 주인공은 개미를 죽이는 일처럼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그것에 전념할 수 있는 일’에 탐닉하며 “나의 삶은 나의 모든 노력을 초월한 곳에 있다”고 말한다. ‘재촉도 지연도 없는 시간, 와해된 공간 속에서 지하수처럼 흐르고’(회저의 시간) 있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한, 권태는 불가피하며 또한 필수적이다.

<죽음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존재인 것은(…) 그것이 결코 우리를 저버리는 일이 없는, 우리의 마지막 동반자라는 사실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그것의 양해하에 삶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권태의 연쇄고리 속에서 인물들이 지향하는 종착점은 ‘무(無)속에서 쉬고 있는 것들에 합류(…)고스란한 붕괴’ (핏기 없는 독백)이자, 곧 죽음이다. 행려병자, 중환자, 기억상실자인 주인공들은 육체의 짓무름을 통해, 노쇠를, 희망 없는 삶을 통해 점차 흔적없이 사라져간다. 주인공이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것 조차 ‘숨을 거두기 전까지 살아 있는 데 대한 구실을 만들 수도 있는’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소설가의 임무는 이미 빈사상태에 처해 있는 소설의 죽음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작가가 여러차례 밝혀온 대로 그의 전략은 소설의 부정에 이른다. 줄거리를 불구로 만들고, 주인공의 말을 자기부정의 늪에 파묻고, 의식의 고리를 이리저리 얽어매 끝없이 헤매게 만든 뒤 주인공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결국 무엇이 죽었을까. “실제로 태어난 적도, 산 적도, 죽은 적도 없는 나는 그 무한한 세계의 지평선 너머에서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다”(핏기 없는 독백) 라고 선언할 때 사라진 것은 여태까지 주인공의 발화(發話) 그자체.

<뭔가에 대한 재능의 부족이 다행인 경우가 있다. 가령, 대중적인 글을 쓸 수 있는 재능의 결핍에 대해 그는 감사한다>

작가는 지난해 9월4일자 동아일보 문화칼럼에서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어둠에 대해 말하는 작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리라는 기대를 처음부터 저버리고 들어가는 작품, 대중의 몰이해를 각오하는 작품’의 필요성을 주문했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가 배반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완전히 지울 수 없다. 단편 ‘분열증’의 실내극적 구도, 또는 다른 단편 ‘괴저’에 나타나는 차가운 풍자가 기자에게만 사뭇 재미있게 읽히는 것이 아니라면.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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