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김승희의 시에는 언제나 상처와 인고, 그리고 부화와 비상이 있다. 시집 ‘달걀 속의 생’의 서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런 두 개의 지평선 위에서 나 그리도 오랫동안 한 알의 달걀 속에 웅크리고 앉아 하나의 기다림을 가지고 있었네. 달걀껍질 안에 웅크리고 앉아 나는 무슨 박혁거세와도 같은 하나의 난생설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일까? 이웃들이여, 그대와 나는 삼성 전천후 냉장고 맨 위 냉장 칸에 꽂혀있는 차가운 달걀들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랑, 그런 꿈, 그런 시대 속에서 아직도 부화를 꿈꾸는 우리들은 무슨 우울한 서사시의 이름 없는 주인공들인가?’
90년대 중반, 김승희는 드디어 태평양을 날아 미국으로 간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날개가 아닌 비행기의 금속성 날개에 의지해 날아갈 수밖에 없었듯이, 미국도 시인이 꿈꾸던 희랍신화의 세계는 아니었다. 김승희가 시의 세계에서 나와 소설의 세계로 들어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제 그녀의 세계는 운문에서 산문으로 바뀌었고, 다달루스적 비상을 꿈꾸었던 그녀의 시는 이카루스적 추락과 실망을 담은 소설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에는 언제나 진한 실락원의 분위기가 깔려있다.
‘21세기 문학’ 봄호에 발표된 소설 ‘인조 눈물’은 작가의 바로 그러한 문학적 여정을 잘 집약해 보여주고 있는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김승희는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그림 속의 물’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즉 그녀는 처음부터 메마른 현대의 풍경화 속에 다시 한번 꽃을 피울 수 있는 ‘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녀가 투고했던 또 하나의 시는 ‘우리의 갑각 문화’였는데, 그 작품 역시 수분을 잃고 갑각처럼 굳어진 현대 문명을 비판한 것이었다.
‘인조 눈물’ 역시 눈물이 말라버린 현대인에 대한 작가의 통렬한 패러디로 시작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인조눈물을 만들어주는 안약의 실험 대상으로 자신의 몸을 대여해주고 돈을 번다. 모든 것이 자본과 몸의 관계로 축소되고 상품화되는 후기 산업사회에 그녀는 실험실에 몸을 팔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대가로 비로소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된다. 이제는 눈물조차도, 자본으로 구매가 가능한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조 눈물’의 초반부 배경은 미국이다. 자본주의가 가장 번성하고 또 그 극에 달한 나라인 미국의 국경지대에서 열리는 소외된 빈자들의 벼룩시장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 그 음악을 듣는 순간, 주인공은 문득 과거의 회상에 젖고, 소설의 배경은 미국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1980년 광주로 바뀐다.
평범하고 꿈 많던 17세의 여고 1학년생 때 목격한 광주민중항쟁시의 대학살로 주인공 이내향의 삶은 마치 ‘양철북’의 오스카처럼 성장을 정지한다. 정신이상인 할아버지, 쓰러져 몸이 마비되어 죽어간 아버지, 그리고 미쳐버린 오빠와 그가 살해한 어머니, 그리고 딸을 위해 아버지가 주문했으나 태평양에 빠져 영원히 배달되지 않는 미국산 피아노, 또 시민군과 광주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오는 것으로만 알았던 미 항공모함 코럴호에 대한 실망- 이러한 것들은 주인공 이내향의 비극적인 상황이자,동시에 이 나라의 슬픈 역사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인조 눈물’은 타자의 상처에 무심하고, 타자를 위해 우는 것조차 잊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동원되어 자신도 모르게 타자의 박해와 제거에 ‘가담, 동의, 수락’했던 우리 모두에 대한 작가의 강력한 고발장이자 예리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이지 심신이 모두 메마른 현대인과 굳어져 가는 현대문명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다시 한번 정신적 재생과 풍요를 가져다줄 수 있는 부드럽고도 넉넉한 ‘물’과 진짜 ‘눈물’일 것이다.
김성곤(서울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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