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1998년 화실 화재에 이어 99년 씨랜드 참사를 겪으면서 받은 개인적 사회적 충격과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성 상실, 그리고 안전 불감증이 던져주는 상혼들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진혼하면서 미술의 치유적 기능을 모색하고 있다.
98년 8월12일 새벽 1시, 작가는 경기 광주에 있는 60평 규모의 작업실을 송두리째 잃었다. 자신이 태어난 날, 태어난 시(時)였다. 화재 현장에서 작가는 불의 악마성과 잔혹함, 그리고 특유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보았다. 작가는 당시 잔해들을 모두 일민미술관 1층 제1전시실로 옮겨왔다. 검댕이 잔뜩 묻은 유리, 엿가락처럼 휘어진 액자, 소실된 마네킹, 녹아내린 얼굴 가면, 타버린 소파와 작업도구 및 주방용품까지…. 다행히 ‘목숨을 부지한’ 아버지와 친할머니의 얼굴가면도 가져와 전시장에 촛불을 켜놓은 채 넋을 위로하고 있다.
특히 전시장을 감싸는 화재 당시의 화염 소리는 화마의 잔혹성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하지만 화재 당시 찍은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은 밤하늘에 가득한 은하수를 담고 있다. 영원과 희망이 살아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천사의 손’이라는 이름이 붙은 2층의 제2전시실에는 씨랜드참사로 희생된 어린이 19명 중 17명의 두상이 사각 철제기둥의 유리상자 속에 담겨 전시돼 있다. 두명의 부모는 끝내 이번 작업에 동의하지 않았다. 실리콘으로 제작된 어린이들의 순진무구한 얼굴이 글리세린으로 된 공간을 떠도는 모습이 아직 그들이 안식하고 있지 못함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천사의 방’으로 명명된 2층의 제3전시실에는 소형 TV 브라운관에 숨진 어린이 17명의 발랄했던 생시 모습과 생기발랄한 목소리가 편집, 재생되고 있다.
작가는 “앞으로도 인간임을 부끄럽게 하는 사건 사고 현장은 놓치지 않고 작업에 반영, 예술과 사회에 관한 성찰과 물음을 던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명철기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