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口蹄疫·Food and Mouth Disease)’이란다. 국제수역(獸疫)사무국(OIE)에서 지정한 가축전염병 가운데 가장 위험한 A급 바이러스성 전염병. 어떻게 하나? 현단계의 대답은 간단하다. “치료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인간에게는 무해하다니 사람들은 여유가 있다. 사료업체와 우유 및 육가공업체의 주식이 일제히 하락했다는 소식이 재빨리 전해졌다. 1997년 구제역이 발생한 대만에서 지금까지 약 41조원의 손실이 있었으니 국내에서 구제역이 번질 경우 피해액이 50조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통계도 나왔다. 총선을 앞두고 축산농민의 표심이 어디로 갈지도 계산이 분주하다. 게다가 온통 증권과 벤처 열풍으로 갈 길이 바빠 농촌에는 눈길을 줄 틈이 없다.
하지만 소리 없이 번지는 구제역 앞에서 전투를 방불케 하는 긴장된 모습으로 죄없는 소들을 강제로 도살해 파묻는 것을 보면서 그제서야 사람들은 “만약에 농촌이 붕괴된다면…”이라는 무서운 가정을 떠올린다. 농촌은 단지 식량생산공장이 아니라 인간의 ‘고향’이다. 우리에게 생명의 힘을 가르쳐 주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콘크리트와 인공잔디로 안락한 공간을 꾸민다고 해서 사람들이 흙을 밟지 않고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자신이 인문학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음을 한탄할 일이다. 풋풋한 흙을 밟을 때의 본능적인 아늑함을 인간은 쉽게 잊을 수가 없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 아니라 자연의 생산물이다. ‘개체생성이 진화의 전과정을 반복한다’는 생물학의 가르침을 기억한다면 인간이 자연과 함께 해 온 역사의 뿌리가 얼마나 질기게 우리를 좇아다니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 문제의 해결점을 찾기 위해 근원을 파고들었다. 생(生)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머나먼 진화의 출발점에서 시작된 생의 충동이 현재의 한 인간에게까지 이르는 연속성을 일깨워 줬고, 역사철학자 빌헬름 딜타이는 한 인간의 존재가 그 동안 축적된 인류 역사의 총체임을 알려 줬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을 지배함을 밝혔고 칼 융은 소속된 공동체의 오랜 집단 무의식이 구성원 하나하나의 심성에 깊이깊이 박혀 있음을 파헤쳤다. 질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선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 7일 미국 셀레라 제노믹스사의 크레이그 벤터 사장은 인간의 DNA 염기쌍 명단을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유전자 왕’이라고까지 불리는 그가 15개국의 ‘인간게놈프로젝트’에서 떨어져 나와 그들보다도 먼저 인간유전자지도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은 유전자연구의 상업성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은 20세기 내내 무기물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버릇을 가지고 이제 생명을 주무르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이미 조용한 경고를 보내 왔다. 에이즈 광우병 구제역 …. 자연과 생명에 대한 윤리는 생명윤리선언문이나 자본의 관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성찰, 그리고 길가의 들꽃 한 송이에서 느끼는 원초적 형제애의 충동에서 나온다. 소가 울고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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