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초상화]이재-이채 초상화는 동일인물?

  • 입력 2000년 4월 11일 19시 51분


조선시대 두 성리학자의 얼굴을 그린 이재(李縡·1680∼1746) 초상화와 이채(李采·1745∼1820) 초상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두 작품은 한국의 초상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측면도인 이재 초상과 정면도인 이채 초상(1802년작)을 잘 들여다보면 얼굴이 흡사하다. 이재와 이채가 피를 나눈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라고 해도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혹시 동일인은 아닐까.

이같은 의문을 품어온 오주석 중앙대겸임교수(한국회화사)는 최근 두 작품의 주인공이 동일인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재와 이채가 아니라 모두 이채라는 것이다. 근거는 무엇일까.

이전에도 동일 인물일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미 성균관대교수(한국초상화)는 저서 ‘한국초상화연구’(1983)에서 “용모와 복식이 너무 흡사해 다른 사람의 초상화로 보기는 어렵다. 이재가 살았을 때 유행했던 화법치고는 너무 서양화의 색조가 짙다”고 한 바 있다.

이재 초상화로 알려진 그림 어디에도 그 주인공이 이재라는 기록은 없다. 이재 초상이라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채 초상화엔 주인공이 이채라는 기록이 들어있다.

오교수를 따라 두 그림을 꼼꼼히 들여다보자.

“눈썹은 모두 단정하게 치켜 올라갔고 바깥으로 갈수록 숱이 많아 두껍다. 보통 사람에 비해 귀가 눈 선보다 훨씬 높이 올라갔는데 그 높이가 두 그림 모두 똑같다. 왼쪽 귓볼 앞의 점은 물론이고 입 턱 수염, 의복과 허리띠 묶은 위치까지 모두 일치한다. 한사람의 기운이다.” 이재 초상으로 알려진 그림은 그의 손자인 이채의 초상임이 확실하다는 것이 오교수의 결론.

얼굴전문가인 조용진 서울교대교수(미술학) 의 분석은 동일인일 가능성을 한층 높여준다.

“이재의 측면 초상화를 정면으로 바꾸면 이채의 얼굴이 된다. 귀 위의 머리카락과 이마의 주름살이 똑같다.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라고 해도 이렇게 같을 수는 없다. 유전적으로 닮는다는 것은 눈 코 입 등의 비례가 같다는 것이지 이처럼 모양이 똑같을 수는 없다.”

조교수는 “눈썹 끝에서 헤어라인 사이의 이마, 코의 모습이 달라 보이지만 그것은 조선시대 측면 초상을 그릴 때 일부러 변형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 이채의 초상화가 언제부터인가 이재의 초상화로 뒤바뀐 연유는 무엇일까.

오교수는 “그것은 아마도 손자 이채보다 할아버지 이재가 더 유명한 인물이었고 이름의 발음까지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아무런 글씨도 적혀있지 않은 문제의 그림(이재 초상으로 알려진 그림)이 이재 초상으로 그릇 전해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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